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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겨울 이야기

이천저널l승인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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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주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YMCA아가야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 준비위원

   

 

요즘 현관을 나서는 순간 절로 나오는 말 “으~추워.” 그리고 어깨를 한껏 웅크리는 저를 보고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엄마, 이거 봐라. (입김을 하얗게 불어 보이며)나 용 같지?”, “그래, 하얀 불 뿜는 용 같아.” 그렇게 연신 하얀 불을 뿜어대는 아이를 YMCA아가야에 데려다 줍니다.

차에서 내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당 한켠 쌓인 눈을 한 줌 집어 짓궂게 제게 던지며 “엄마, 잘 가.” 하고 웃어 보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추위에 잠깐의 외출도 잔뜩 움츠리게 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겨울은 눈이라는 무한한 놀잇감이 있는 즐거운 계절일 뿐인가 봅니다.

아가야 친구들은 매일같이 밖에서 놉니다. 털모자, 장갑, 목도리를 단단히 하고 겨울바람과 눈과 벗하며 코로 입으로 하얀 김을 뿜으며 하하하 깔깔깔 그렇게 뛰어 놉니다. 눈 위에 발도장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하얗게 눈 쌓인 나무를 흔들기도 하고, 눈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정해진 놀이가 없어도 이미 세상 모든 것이 새로운 놀잇감이 되었습니다. 눈이 왔으니까요.

얼마 전 아이들이 썰매장에 다녀왔습니다. 썰매장이라 하면 요란한 유행가요가 울려 퍼지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일제히 플라스틱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썰매장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그런 썰매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가야 선생님의 밭으로 썰매를 타러 간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쓰는 비료비닐에 짚을 넣고 입구를 단단히 줄로 매어 손잡이처럼 잡을 수 있게 썰매도 직접 만드셨다고 합니다. 밭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으로 가득할 뿐, 요란한 유행가요도 통제의 호루라기 소리도 없습니다.

물론 세련된 시설과 친절한 서비스로 아이들이 겨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겨울에는 체험 놀이터, 키즈 카페, 박물관, 공연장 등 아이들을 기다리는 많은 실내 프로그램들이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이유는 하나, 추워서 야외활동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가야를 3년 째 보내면서 깨달은 바는 아이들은 날씨로 인해 야외활동을 꺼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 힘든 건, 아니 귀찮은 건 우리 어른들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시선을 굳이 안전한, 따뜻한 실내놀이로만 이끄는 것은 귀찮은 어른들의 핑계는 아닐까요?

훗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도 겨울이 돌아오면 겨울놀이를 추억하겠지요. 이 추억의 한 켠엔 썰매장이 되어 준 비탈진 밭과 썰매가 되어 준 볏짚이 자리할 것입니다. 이는 손쉬운 ‘소비’로써의 놀이의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과 삶에 대한 ‘경험’이 녹아있는 추억일 것입니다. 이런 추억들이 촘촘히 모여 생태적 감수성을 간직한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매일같이 겨울바람과 동무해 노는 아들은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간혹 저녁에 묽은 콧물을 흘리는 날은 따뜻한 꿀물에 배즙을 타서 먹입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난 아침에 등원준비를 하며 또 털장갑과 모자를 챙깁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엄마, 가라 입을 바지랑 양말 하나 가방에 넣었어?” 오늘도 또 밖에서 놀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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