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경 네 살 자녀를 키우는 YMCA아가야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 준비위원

처음으로 아이가 내게 오던 날….그리고 그날부터 10달을 꼬박 품고 품어서 세상 밖에서 다시 아이를 안던 날을 떠올려본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결혼 후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했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아팠던 만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의 감격이 아직도 몸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나에게 와 준 내 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빛으로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던 날, 처음으로 혼자서 안고, 처음으로 한 발짝 내딛어 걷던 날, 두 팔 벌려 기다리던 내 품에 넘어질 듯 말 듯 아장아장 걸어오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이가 4살이 됐다.

엄마와 함께 길게 지내는 시간 보다 또래와 잠깐의 마주침에 커다란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즈음 우연히 한 기관의 설명회에 참석하게 됐다.

당시 온갖 매스컴에서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여러 기관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뉴스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대로라면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기관들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생겨나면서 이럴 때 나는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커져만 갔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그 때.

1년 열 두 달 동안 자연이 그려내는 여러 가지 풍경 속에서 긴 나들이와 짧은 나들이를 통해 기다림과 느림이 주는 힘을 알아가고자 하는 이곳의 교육철학이 닫혀가던 내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설명회를 듣는 내내, 무엇보다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했던 나의 마음과 기관이 주는 교육철학이 맞아떨어진 느낌이 들어, ‘이곳이라면’ 느리게 걷는다고 재촉하지 않고 빨리 걷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 그저 아이의 자라는 속도에 맞춰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지켜봐 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이 바뀌면서 자연이 남긴 풍경과 함께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냥 웃음이 났다. 좋았다.

그 후로 6개월이 흘렀고 아이는 요즘 그 곳에서 자연을 담아내느라 마음을 키우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기관에서 보낸다. 그래서 부모들의 선택은 더욱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문득 아이가 부쩍 자라고 있음을 생활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 자연이 그린 그림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다가 오는 아이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아이가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아이를 통해 내가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기웃거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단단하게 잡아주고 있는 이곳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속도의 빠름만이 중요시되는 요즘, 아이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느리게 걷고 있지만 그동안 빠른 걸음걸이로 놓쳤던 사소한 풍경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가 와서 나무가 흔들리는 냄새를 맡고, 해와 구름이 서로 숨바꼭질을 하는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들려주는 콧노래를 들으며,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풍성한 것들을 담게 되는 이곳의 너른 소리가, 나와 내 가족뿐만 아니라 온 마을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언제가의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난 느리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