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아 (6세 여자아이를 키우며 이천YMCA아가야 부모협동어린이집 준비위원)

결혼한지 2년.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너무도 기뻤다. 비록 뱃속에 있는 태아였지만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입덧이 가라앉고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임신과 육아에 관한 카페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카페의 회원수는 어마어마했다. 카페의 어마어마한 회원수 만큼 임신과 육아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났다.

임신 후반기 조산기로 인해 직장을 쉬고 집에만 있게 된 나는 집에 있으면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카페에 매일같이 드나들며 올라온 글들을 읽었고, 정보를 검색했다. 그 카페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좋다면 앞뒤 안 가리고 준비하며 사주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들의 그런 태교에 동참했다. 태교에 좋다는 모차르트CD 듣기며, 영어CD를 들으며 영어 책 읽어주기, 모빌 만들기는 기본이었고, 펠트 놀잇감 만들기, 베냇 저고리 세트 바느질해서 만들기, 인형 만들기 등 안하면 왠지 나쁜 엄마가 될 것 같아 밤을 새가며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만큼 했으니 참 좋은 엄마야’ 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방을 꾸민다고 남편과 함께 방 하나를 직접 도배하고, 서랍장이며 옷장을 구입하고, 좋다고 입소문이 났던 외국 브랜드의 값비싼 아이 침대까지 예약을 해 놨었다. 유명하다고 입소문이 난 여러 장난감도 구비해 놓았다. 그것들을 쳐다보며 스스로 만족하며 뿌듯해 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사소한 기저귀와 물티슈에서부터 옷, 먹는 것, 놀잇감, 책 등등…. 엄마인 나는 항상 바빴다. 직장도 다녀야지, 아이도 돌봐야지, 아이에게 좋다는 것도 알아보고 사줘야지….

그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읽으면 나는 항상 불안해졌다.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더 사줘야 할 것 같았고, 아이에게 좋은 놀잇감이나 책을 사주지 않으면 뒤처지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직장에서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과 시간이 나면 놀잇감이나 책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요즘엔 이 블럭이 좋다더라, 이 책이 잘 나간 다더라’와 같은 대화를 했고, 결국에 좋다는 것들은 대부분 구매하게 됐다. 우리 집은 곧 아이의 물건으로 넘쳐났고, 우리 집에 놀러온 손님들은 아이의 놀잇감을 보며 ‘아이 하나 키우면서 아이에게 올인 하나봐’라는 말을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아이와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유치원을 옮겨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지인이 소개해 주신 YMCA아가야를 방문하게 됐다. 비가 오던 날, 좁은 골목을 운전해서 아가야 앞에 차를 겨우겨우 댔다.

들어가 보니 작은 방 세 개, 각각의 방에는 눈에 띄는 놀잇감이나 일반 유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방놀이도 없었다. 있는 놀잇감들도 내 눈에는 초라하게만 보이는 블록과 책들…. 사실 그 당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놀잇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아가야를 택했고, 아이는 아가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작년 크리스마스에 아이는 트리를 사서 장식하자고 했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 장식해 놓을 트리를 굳이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주지 않았더니 아이는 페트병을 이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휴지심을 버리지 않고 모아 그걸 이용해 망원경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놀았다. 그리고 모아놓은 휴지심을 아가야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야에는 마트나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완구 놀잇감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들이 손수 만드신 인형과 노끈으로 만든 바구니, 뜨게 바늘로 만든 긴 줄, 종이로 만들 벽돌 블록, 가베 등 이런 놀잇감들이 전부였다. 아이는 벽돌 블록으로 차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기린도 만들어 타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놀이를 했다. 잡지에 있는 사진과 그림을 활용해 친구들과 선생님과 가게 놀이를 했고, 이면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집에서 가져갔던 휴지심으로 미술활동을 했다.

나도 자연스레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이젠 어떤 놀잇감이 유행하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유행하는 놀잇감이나 책을 사주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빈 박스나 재활용품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재활용품에 새 생명을 불어 넣었다. 아이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해내고 있었다. 엄마의 무지함으로 아이의 이런 능력을 더 일찍 키워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우리 아이는 오늘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주방용품을 보며 ‘엄마, 나 이거 써도 돼?’하며 세상의 모든 것들로 다양한 놀이를 창조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