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보순자 (15살, 12살, 9살 딸들과 14개월 된 아들의 엄마, YMCA아가야 센터장)

경칩이 지났다. 그래도 아직은 추운지 겨울잠을 깨고 나온 개구리를 찾지 못했다. 아니, 개구리를 볼 수 있는 장소도 멀고, 찾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시끌벅적 전쟁을 치르고 출근한다. 아침 7시 40분이면 세 딸들을 학교로 보내고 밥상 치우고, 설거지나 막내아들 똥 싼 기저귀 치우다 보면 어느새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헐레벌떡 씻고 옷 입고 나서다 보면 지각하기 일쑤다. 그리곤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는 게 싫어 내일은 5분 더 일찍 나오도록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매일 똑같이 반복되곤 한다.

세 딸들은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말리고, 앞머리 고데기를 하고,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를 고민하다 남은 시간에 아침밥을 겨우 몇 숟가락 뜨고 간다. 그러다 보면 배고플까, 지각할까 걱정되는 엄마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가기 1분 전까지도 밥상에 앉아 시계를 보며 밥을 먹고 가거나 그냥 굶고 가기도 한다.

그러니 저 잤던 이불, 입었던 옷가지들이며, 닦은 수건, 머리 빗, 드라이기, 떨어진 머리카락 등을 남겨둔 채 후다닥 사라지곤 한다. 그 부산물들은 하루 종일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는 친정엄마의 몫으로 남게 되어 집을 나오는 발걸음이 늘상 무겁기만 하다. 그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끔 딸들과 논쟁을 하곤 한다.

이틀 전 14일이 화이트데이 인지라, 셋째가 아빠에게 친구들 나눠 주고 싶다고 사탕 사오라고 전화를 했던가 보다. 센스 없는 아빠는 큰 통에 잔뜩 들어 있는 사탕을 사다주며, 언니들도 나눠주라고 한다. 7년을 막내로 지내던 욕심 많은 셋째가 언니들에게 사탕을 어떻게 나눠줄까?

저 쪽에서 “이거 밖에 안줘?” 하는 큰 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덩치만 보면 아가씨라 해도 아무도 의심 안 할 테지만, 먹는 것 등으로 동생들과 다툴 때 보면 영락없이 아직도 ‘애’이다. 별수 없이 엄마인 나는 색깔대로 골고루 하나씩 골라 한 묶음씩 나눠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둘째가 그래도 억울한지 밥 먹으며 투덜투덜 동생을 비아냥거린다. “저번에 내가 전화해서 아빠가 초콜릿 3개 사 왔을 때 나는 한 개씩 나눠 먹으라고 했는데, 왜 엄마는 현서보고 한 묶음씩만 주라고 해?”라고 따진다. 둘째로 태어나 늘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터라 사탕도 똑같이 삼등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인 나는 “그래서 속상 하구나”하고 받아주면 되는 것을 논리적으로 아이 말에 반박해 이기려 하고, 옆에서 잠이 덜 깬 채로 밥을 먹던 아빠는 “그건, 엄마 말이 맞네!”, “그래, 계진이가 속상하겠네!” 하며 중립을 지키려 애쓰고, 할머니는 논쟁이 익숙하지 않은지 “시끄럽다. 그만하고 학교 가라!”라고 하신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추임새에도 불구하고 둘째 딸이 반박할 말이 없을 때까지 논쟁을 마무리 하자 둘째는 쌩하니 집을 나가고 괜히 미안해진 셋째는 “언니 같이 가!” 하고 촐랑촐랑 따라 나간다. 지네 언니 속은 어쩐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도 저녁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같이 볼이 불룩하게 사탕을 나눠먹고 퇴근한 나를 붙들고 조잘조잘 거린다. 그런 딸들이 예쁘고 아이 하나 둘 키우는 집보단 풍족하진 않지만, 형제 많음을 행복으로 잘 성장하리라 믿고 있다.

막내아들은 자라서 어떻게 또 한 몫 할까? 어쩌다보니 넷째까지 낳아 기르고 있지만, 저마다 아롱이다롱이다. 아이 하나 혹은 둘 키우는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일 것이다. 아이들은 갈등을 통해서 관계를 이해하고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힘을 기르는 것 같다. 어른들보다 낫다. 그런 아이들 보며 엄마도 성찰하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아이 한 둘 키우는 요즘의 도시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예전의 대가족이나 마을에서처럼 복잡한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갈등, 존중과 배려,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을 배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요즘 학업성적, 경쟁과 왕따, 학교 폭력 등으로 청소년의 행복도가 OECD국가 중에서 꼴찌였다는 어떤 잡지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 만무하니 답답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순 없어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자 고민을 함께하는 부모들이 모였다.

부모들은 ‘너른 마당’을 이뤄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고자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각자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그 속에서 서로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며, 그 과정을 통해 배움과 성장을 하고, 서로의 배려와 사랑으로 동시대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

오는 3월 24일(토) ‘부모협동조합어린이집 조합원 모집 설명회’를 개최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천YMCA아가야로 문의(T.635-0883)하면 된다.

이천저널  icj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