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아 (YMCA 아가야회원)

오늘도 딸아이는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직장에서 끝나자마자 딸아이를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요구를 지나치고 싶지만 마음껏 뛰어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로서는 오늘도 딸의 요구를 지나치지 못한다.

태어나서 1년, 잘 먹고, 잘 자고, 큰 탈 없이 자라 준 우리 딸이 참 고마웠다. 친정엄마는 내가 어릴 때 예민하고 잘 울어서 많이 힘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서인지, 아니면 딸아이가 순한 편이었는지 첫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일 줄이야. 딸아이는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걸었다. 대근육 발달이 어찌나 빠른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걷기 시작해서 빨리 뛰고 그만큼 활동량도 많았다. 밖으로 나가 노는 것도 너무 좋아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3시간이 넘도록 놀이터에서 놀곤 했고, 추운 날도 나가 놀길 원했다. 그런 아이의 요구를 나는 거의 들어주고픈 엄마였다. 어릴 때 신나게 뛰어 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내가 조금 힘들어도 참았다. 눈이 오는 날이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눈을 구경시켜 주고, 눈사람을 만들어 주고, 썰매를 끌어주는 어떻게 보면 극성(?)의 엄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육아가 3년이면 끝날 것처럼,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힘든 것은 감수하고 아이만을 위해 살아온 것 같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닌 후로는 퇴근 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거의 매일 밖에서 놀자고 했다. 아이와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가면 그만큼 하루 일과가 늦어졌다. 저녁을 준비해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놀다가 재우고….

어떤 엄마나 하는 하루 일과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일이 버겁고 힘들었다. 그동안 아이의 요구, 특히 밖에서 뛰노는 요구는 거의 들어줬던 나였지만, 이젠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들어가며 아이를 놀지 못하게 했다. 그럴수록 아이와 부딪히고, 아이를 강압적으로 다루게 되고, 아이도 나도 감정이 다치고 힘들었다.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 때문에 아이와 갈등이 생겼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지인이 소개해주신 YMCA에서 운영하는 ‘아가야’로 아이를 옮겼다. 사실 옮기면서도, 처음에 보내놓고도 반신반의 했었다. 아이도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아가야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밝지만은 않아 걱정도 했었다. 그렇데 두 달 가량이 지났는데 아이는 더 이상 퇴근 후에 밖에서 놀자고 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지쳐있었기에 그런 아이가 내심 고마웠다.

아가야 홈페이지에는 아이들이 활동한 모습이 매일매일 올라온다. 마당에 나가 신나게 노는 모습, 매주 화요일이면 설봉산에 가서 등산하고 산에서 마음껏 탐색하고 뛰노는 모습, 산책을 나가 놀이터에서 뛰노는 모습, 창전문화센터 앞뜰에서 놀고 싶은 대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 장날엔 시장에 나가 뻥튀기 기계 앞에서 귀를 막고 뻥튀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 방앗간에 가서 떡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그제야 알았다. 왜 우리 딸아이가 어린이집이 끝난 후 더 이상 밖에서 놀자고 하지 않는지를. 아이는 충분히 놀고 있었다. 그렇게 활동적인 아이가 흡족할 정도로 이미 놀고 있었다. 아가야에서 그렇게 신나게 놀고 온 아이는 더 이상 밖에서 놀자고 할 이유가 없었다.

겨울이 됐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횟수가 아무래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밖에서 놀자고 엄마에게 보채지 않는다. 이미 흡족할 만큼 많이 놀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실내에서 하는 놀이를 차분히 즐긴다. 밖에서 신나게 뛰노는 경험은 아이들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