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익 재경이천시민회 회장

옛 우리 선조들은 사람을 평가하는 지혜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 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이는 사람의 됨됨이나 재능을 시험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중요 척도였다. 첫째 신(身)은 신체의 건강과 용모와 적절한 몸가짐이다. 둘째 언(言)은 사람과의 대화능력과 말솜씨 즉 언변을 이르며, 셋째 서(書)는 문장력과 글씨, 그리고 배움이다. 넷째로 판(判)은 사건의 잘잘못을 가리는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이 그것이다.

또한 오늘날과는 다르게, 과거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성적만으로 바로 등용되지 않았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갖춰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있어서 말(言)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말` 한마디에 역사가 바뀐 사례도 많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 한마디가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당겼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이 일본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는데 일본정부 측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 언론이 “무시 한다”로 발표해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동독에서 ‘동서 베를린 시민의 왕래가 가능한 여행법 개정’을 발표했는데 독일어에 서툰 외국 기자가 ‘여행을 개방 한다’라는 조항을 ‘국경을 개방 한다’로 오역하는 덕분에 1961년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곤 한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막말`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를 의미하며 `막말`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도 아마 정치권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민심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국민들 앞에서 `막말` 정치를 한다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라 생각이 된다.

몸에 난 상처는 약으로 치유할 수 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한평생을 함께 간다. 남에게 한 말뿐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도 자신의 마음속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남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은 다른 사람의 인생자체를 뒤바꿀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말은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주로 하는 말이 어떠한가를 잘 살펴보고 나의 언어 속에 포함된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 과정이 수고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나의 말을 듣는 다른 사람과 나의 인생을 동시에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언도 수없이 많다. ‘말은 남을 죽일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칼에는 양날이 있지만 사람의 혀에는 백 개의 날이 달려있다’라고도 했다. 특히 사회 지도층,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국력이 낭비될 수도 있고 나라의 품격이 저하되며 진실을 왜곡하는 말 한마디로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정치권의 막말 논쟁은 우리에게 언어 선택의 중요성과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 정치권, 사회지도층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막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막말`을 삼가는 새로운 문화와 상처나 오해를 주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말을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생겨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 만큼이나 아름답고 따뜻하게 변화되어 갈 것 같다.

이천저널  icjn25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