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자유가 방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김한나씨

전사자들의 아픔 뒤에 가려진 유가족들의 처참함
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전사자 한상국 중사의 아내 

“푸대접, 감시로 미국으로 떠났던 전사자의 아내, 정권 바뀌어 귀국”
“정치가들은 미워했지만 남편이 목숨으로 지킨 대한민국,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었다”


며칠 전 일간지에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이 11년간 직업도 없이 어렵게 살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박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순국한 전사자의 유가족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냐!”라고 발언한 내용이 보도됐다.

기사를 보니 유가족이 사는 곳은 인근 경기 광주시였다.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
처음 상대 유족은 필자에 대해 경계심을 보였다.

“호국영령들 덕분에 잘 지내는 국민의 일원으로 유족들께 감사드린다. 유가족 중에는 정권의 푸대접에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떠났던 분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라면서 통화 중 “제가 조국을 떠났던 그 유가족입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탁’하고 가슴이 막혀왔다. 할 말을 잃었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를 이렇게 무시하는 현실에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정처 없이 미국으로 떠났던 그 여인!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싫었지만, 남편이 목숨 바친 그 조국,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었다.”

그날 오후 3시, 경기 광주 시청 3층, 안내 데스크 옆 휴게실에 가녀린 몸매의 여인이 나타났다. 참수리357호 조타장 한상국 중사의 아내 김한나(38)씨였다.
본의 아니게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야 했다.

▲ 경기도 광주시청 휴게실에서 연평해전 이야기도중 눈물을 흘리는 김한나씨.

-미국으로 이민 갔던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도저히 살수가 없었다. 영결식 날 남편은 바다 속에 잠겨 시신도 못 찾아 울고 있는데(남편의 사체는 41일 만에 찾았다.) 6명 전사자들의 영결식을 뒤로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천왕(?) 부부와 나란히 앉아 우리나라 경기도 아닌 독일, 브라질 경기를 보며 박수치고 있었고(영결식도 國葬도 아닌 해군장이었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방장관조차 오지 않았다. 그 후 정권이 바뀌어 노무현 정권이 되어도 마찬가지, 오히려 나를 감시하고 괴롭혔다. 전사자들은 나라를 위한 전사가 아니고 ‘공무 중 사망’ 처리됐고, 국가보상금도 3-4천만원에 불과했다. ‘왜 남편이 이런 나라를 위해 순직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사한 남편이 불쌍했다. 남편은 그래도 죽는 순간 옆구리에 파편으로 구멍이 나도, 아니 죽은 후에도 나라를 위해 조타 키를 잡고 놓지 않았는데…. 그리고 이민이 아닌 불법체류였다. 3년간 뉴욕으로 가서 식당 허드렛일, 사무실 청소 등 막노동을 했다.”

-3년 후 귀국이유는?
▶“MB 정권이 들어선 후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바꿔 부르고, 기념식 11년 만에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공무 중 순직’에서 ‘전투 중 전사’로 보상규정 등의 법령도 바뀌었다. 그런 이유도 있고 또 남편이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은 정치가들이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이었다. 나도 정치인들은 미웠지만 단 한 순간도 대한민국을 잊은 적은 없었다.”
-남편 전사 후 국내나 미국에서 돌봐준 사람이 없었나?
▶“경제적인 도움은 없었다. 미국에도 아는 이 하나 없어 하루살이같이 살았다. 국내에서도 직장을 잡지 못해 일용직 등으로 연명해왔다. 인터넷에는 비방 글이 끊이지 않아 정신적으로 더 힘든 나날이었다. 심지어 해군에서도 높은 분의 눈치를 보느라 외면했다.”

-연평해전의 의미를 말해달라.
▶“NLL은 6.25후 20여 년간 남북이 지켜온 해상 3.8선이다. 휴전 당시 해군력이 강했던 유엔이 이북5도를 제외한 섬들을 북에 양보하고, 또 NLL선을 그어 우리가 북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해군력이 전무하여 우리측의 해상공격을 우려하는)북을 배려한 해상경계선이었다. 당시 북도 이의를 제기치 않고 20여 년간 지켜오다가 잠수함 등 해군력이 강화된 북한이 남한 적화야욕의 한 방편으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북에서는 이곳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고 하는데 북에서 어선만 내려 보내겠는가? 분명 북의 군함들(어선으로 위장한 군함, 잠수함 등)이 상주하는 사실상의 북한군 해역이 될 것이다.
우리해역이 분명한 동해안에 침투했던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사건을 잊었나?
NLL선이 내려오면 인천공항, 서울까지 하늘과 땅 모두 적의 직접 포화에 노출된다. 어느 나라 항공기가 항로 바로 밑 바다에서,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예측 불허한 북의 함포, 잠수함 미사일이 겨누고 있는데 인천 공항에 오겠는가? NLL은 3.8선보다 더 중요한 선이다.”

-11년 만에 직장을 구했다고 들었다.
▶“박근혜대통령께서 유족들에 관심을 가져주셨고, 경기 광주시 노철래 국회위원, 조억동 광주시장님의 배려로 9급 기능직 자리에 취업이 되어 기쁘다. 생전 처음 얻은 안정된 직장이다. 열심히 일해 나라에 보답하겠다.”

-끝으로 하고픈 말은?
▶“‘아픈 과거 역사’에서 배우는 게 없다면, ‘평화로운 미래 역사’를 써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게 ‘자유’인지 ’방종’인지 분별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과거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라면 우리후손들이 그 아픈 역사를 다시 겪지 않도록 우리도 희생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글·사진 <이계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