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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실패하는 것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 10

이천저널l승인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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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기흡 이천시민장학회 사무국장
전교에서 상위권에 드는 고3 학생이 있었다. 2학기 수시 접수를 앞둔 어느 날 기운이 하나도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있었다.

 

“왜 그러는데?”
“오늘 OO대 의대 마감일인데 원서도 쓰지 못했잖아요.”
“왜?”
“아빠와 담임이 써봤자 100% 떨어질 게 뻔 하니까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 학생은 씩씩거리며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화가 풀릴 때를 기다려야 했다. 한 동안 그렇게 앉아 있던 아이가 그나마 마음이 풀렸는지 저를 보고 씩 웃었다.

“너, 내신 성적이 생각보다 나쁜 것 아니냐?”
“아뇨, 내신은 최상이에요. 단지 모의고사 점수가 좀 안 나와서 그러지.”
“그럼 아빠와 담임선생님 말씀이 잘못된 것은 아니네.
“저도 그건 알아요.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요. 누가 알아요? 수능 당일에 컨디션이 좋아서 좋은 점수가 나올지….”

생각해 보면 학생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우선 내신 성적으로 1차에 합격만 하면, 당일날 수능 점수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설사 수능 점수가 안 나와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아예 원서도 쓰지 못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보다는 덜 억울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원서를 쓰기만 하면 밑져야 본전인 것인데, 왜 원서도 쓰지 못하게 해서 자신의 기를 죽이냐는 것이다. 며칠 후에 학생의 아버지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아이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아이가 OO대학교 원서를 쓰고 싶다고 하는데 말리신 적이 있나요?”
“글쎄요, 전 그런 적이 없는데….”
“아이가 OO대 의대에 원서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100% 떨어질 거라며 원서를 쓰지도 못하게 했다고 하던데요.”
“아, 그거요. 담임선생님이 현재의 모의고사 점수로는 어림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수시에 신경 쓰기보다 수능에 몰두해서 점수나 좀 더 올려보라고 했지요. 그러면 내신이 좋아서 서울대도 가능하다고 하길래….”
“……?”

사실 그 아버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이가 내신 성적은 좋은데, 생각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오니까 수시에 지원하면 마음이 들떠서 오히려 수능을 망칠 수가 있으니까 그때까지 수능점수를 올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신 성적이 워낙 좋으니까 수능 점수만 잘 받으면 서울대도 가능하고, 또 정시모집에서 아이가 원하는 의대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능점수를 자신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수시모집에서 내신 성적으로 우선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합격만 하면 수능에서 어떻게든지 최소 등급만 맞으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자신의 고집을 피웠던 것인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이 상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아버지나 담임선생님은 내신 성적은 좋으니까 걱정할 것이 없는데, 그동안 모의고사 시험결과로 봤을 때 이 학생이 시험 막판에 괜히 수시 모집에 신경 쓰다가는 수능시험을 더욱 망칠 위험이 있으니까 그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아버지나 담임선생님의 말이 더 현실적이다. 당장 저조한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점수로 이어지면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아이가 원하는 소위 일류대에는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수시에 신경 쓰기보다는 수능시험에 전념을 하는 것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의 마음이다. 학생은 이미 수시에 신경이 쓰여서 아버지나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수능시험에만 전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심으로 수능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수시모집에 신경을 쓴 것인데, 그야말로 아버지와 담임선생님한테 무시를 당하며 원서조차 쓰지 못했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해주었으면 끝까지 자기 인생에 책임을 갖고 시험에 전념을 했을 텐데,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까 불만을 터뜨릴 대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때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실패하는 법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떠올랐다. 그 아버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받아 들이실지 몰라 아무말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막판에 아버지는 아이의 수능성적을 올리기 위해 영역별 족집게라는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었다. 수능점수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났다. 그 해에 학생은 수능에서 몇 점 차이로 최저 등급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를 받아 재수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수능점수가 안 나왔는데 아이가 하려고 했던 대로 수시 원서를 다 썼다면 수능점수는 더 낮아질 수 있지 않았겠냐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때 차라리 아이가 하려고 했던 대로 따라 주었다면 오히려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수시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서류를 쓰기라도 했다면, 아이는 스스로 의욕을 갖고 수능에 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를 원망하고 할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막판에 족집게 과외 선생님을 붙여서 아이에게 시험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효과를 얻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누구나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가슴 아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얼른 그것을 해결 해 주려고 나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항상 좋은 일만 겪으며 살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안 좋은 일도 겪어야 하고, 좌절도 하고, 실패도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 자식이 안 좋은 일이나 좌절과 실패를 딛고 스스로 일어서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 스스로 실패하는 법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좀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곁에서 지켜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아이가 생명의 지장이 있을 정도의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아이가 스스로 실패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도록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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