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익 재경이천시민회 회장

“언제 또 올래?”
올해로 아흔 다섯이 되시는 우리 어머님을 뵈러 고향집에 다녀 올 때면 손을 꼭 잡고는 아쉬워하시며 늘 하시는 말씀이다.

“곧 또 뵈러올게요, 엄마”

딸아이가 시집가서 외 손주를 낳아 할아비 소리를 듣는 지금도 우리 칠남매 중 여섯째이자 아들 중 막내인 나는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 아직도 ‘엄마’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먼저 배우는 단어가 ‘엄마’라는 단어라고 한다던데 언제 들어도 눈물부터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지금껏 내가 살아가는 큰 버팀목이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강한 분이다. 논 여섯 마지기를 받고 할아버님 댁에서 분가하시자 아버님에게 그 당시 쉽게 치료할 수 없었던 맹장염이 생기셔서 전쟁 통에 모든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두 분은 집에서 인민군을 맞으셨다고 한다. 이미 이천에서 3번 이상 수술을 하였으나 재발이 되어 상처가 곪아 터진 상태에서 집에 들어온 인민군들이 젊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끌어가려고 하자 어머님께서는 눈물로 호소하며 환자이니 제발 살려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물론 그놈들은 아버님의 맹장부위를 무참히 군화발로 짓이기며 떠나갔으나 목숨만은 살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아버님의 상태는 위중해져갔고 큰아버님들께서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으니 포기하자고 하여 문중에서는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자 우리 어머니는 어른들께 두 무릎을 꿇고 제 소원이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셔서 논 세마지기와 송아지 한 마리를 팔아 달구지에 아버님을 모시고 서울 신당동 어느 곳에 가서 다섯 번째 수술을 하여 기적적으로 완치되셨고 이런 어머니의 정성으로 아버님은 88세까지 장수 하실 수 있었다.

또한 평생을 온갖 농사일을 하시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형님 셋을 서울로 유학 보내고 그 뒷바라지를 감내해내시며 7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어머니는 장날이 되면 옥수수를 쪄서 머리에 이고 읍내 이집 저집을 다니시며 팔아서 자식들 용돈을 마련해 주기도 하셨다. 특히 나를 낳으시고는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시고 무리하게 밭일을 하시다가 입이 돌아가는 병을 얻게 되셨다고 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셔야 했기에 나를 누이들이 돌보아 주었고 갓난아기인 나에게 젖을 제대로 먹일 수 없어서 울다 지치면 때마침 여자아이를 낳고 사랑방에 살던 아주머니께 동냥젖을 얻어 먹여가며 키울 수 있었다고 하시며 지금까지도 내게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표하시는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식사랑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마는 유독 우리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남다르셨다.

올 곧고 엄하신 아버님을 수발하시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평생을 바치신 어머니는 나보다 남을 위한 배려가 너무도 많으시고 정도 많으신 분이다.

내 고향 이천시 송정동, 이름 하여 구작골은 양쪽 야산이 온화하게 동네를 감싸고 있어 바람막이가 되기에 겨울철에도 비교적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곳이다. 그래서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에는 걸인들이 거의 매일같이 출근을 했고 서로가 부족하고 못 먹고 살아가던 때이기 때문에 쉽게 밥을 많이 주던 우리 집은 이러한 걸인들의 단골집이 되었다. 또 사랑채에 들어있던 일꾼들의 밥공기는 늘 집안 식구들보다 높게 쌓은 성벽과도 같이 수북했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어 오신 어머니, 그래서인지 우리어머니는 복도 많으시다. 읍•면장을 지낸 형님과 형수께서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신정에는 어머님을 모시고 7남매와 조카들까지 30여명이 모여 조촐한 행사를 했다. 만면에 웃음을 띤 굵게 주름진 우리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천사의 모습보다도 밝게 보였다.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나의 어머님께서 더 행복하고 강녕하셔서 장수하시기를 막내아들은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린다. 

이천저널  icj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