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열린 ‘진사백자전’을 축하하는 테이프커팅식.

천안예술의전당 17~25일 ‘성료’

- 장작가마만 고집해온 ‘장인정신’

지난 17일 천안 예술의전당 문화센터 1층 전시실에서는 항산 임항택 선생의 ‘진사백자전’이 열렸다. 9일간 펼쳐진 이번 전시회에서 붉은색 진사를 중심으로 준비된 100여점의 작품은 늦가을 중부권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번 ‘진사백자전’은 항산도예연구소가 주관하며, 천안시의회와 (주)아르테인터내셔날, 항산후원친목회가 후원한 가운데, 이날 개막식에는 이계진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관계, 예술, 종교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항산 선생과 진사백자의 예술혼에 심취했다.

항산 선생은 “붉은 진사 파편 한쪽이 강렬하게 저를 이끌어 오늘을 있게 했다”며 “처절한 선혈의 붉은색을 연구하고 표현하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동(銅)과 금(金)으로 표현된 붉은 자색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계진 전 의원은 “20여년이 넘게 항산 선생을 알고 지내면서 진사백자에 대한 정열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아직도 장작가마를 고집하며 모든 작업이 일관된 것을 볼 때 작가의 힘과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특히 이날은 항산후원친목회(회장 박선기) 회원 20여명이 전시장을 찾아 후원금을 전하고 의자와 음식을 나르며 개막식 준비를 도왔다. 앞으로 후원회는 이천이 낳은 도자명장 항산 선생에 큰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였다.

-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예술혼

조선백자라 함은 무(無)의 개념이다. 순백자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 하얀 자기에 투각을 해 무늬를 만들거나, 안료를 써 색을 내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는 무(無)라는 우주의 개념에 우리네 인생사를 담아내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그 중에서 동(銅)을 사용해 붉은색을 낸 백자가 ‘진사백자’다. 한평생을 붉은 진사파편에 끌리어 처절한 선혈의 붉은색을 찾아내기 위해 살아온 도자 명장이 바로 항산 임항택 선생이다.

항산 선생은 “처음 만난 진사의 붉은색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했다. 과거 한국 도자는 기술과 고유성, 특성 등이 맥이 끊긴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고 발전시키는, 즉 전승 도자기의 문화를 펼치는 것이 진정한 도예가의 의무”라고 말한다.

항산 선생의 말을 빌자면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져온 한국도자는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고, 이후 1884년 관요(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기 제작을 위한 사기제조장)가 민영화되면서 일본도자기술이 유입되고 급기야 한일합방으로 한국도자의 기술은 맥을 잃게 됐다.

그리고 1950년대 말까지 도자문화의 암울한 시기는 이어져왔고, 그 이후 이천을 중심으로 잃었던 도자기술 1000년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 진사백자의 복원을 위해 항산 선생이 있었다.

▲ ▲진사백자 홍시문호 진사로 홍시를 그리고 투명백자유약을 시유하여 129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소성한 전통재래식 가마에서 소성한 조선전통백자.

- 붉은색 혼을 동과 황금에서 찾았다

진사는 12C 중엽 고려청자에서 학의 정수리, 꽃의 화심 등 문양의 일부분에 간간히 발색되기 시작했으나 고려왕조의 몰락과 함께 13C 말로 그 기술의 전수가 끝났다.

진사 작품은 십장생문호, 포도문호, 연화, 목단 등으로 소수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으나 좋은 발색의 진사작품은 더욱 희귀하여 몇몇 유물만 문화재적 가치가 높이 평가 되고 있다.

진사는 조합비, 사용하는 소지의 종류, 소성 조건 등에 따라 발색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본래의 진사작품을 생산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항산 선생은 이점을 늘 안타깝게 여겨 1977년부터 전통가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사안료를 수율 좋게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하기 위해 과거부터 구전되어온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체계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33년간 전통가마를 사용하여 누구나 선호하는 맑고 밝은 붉은색의 진사제품을 수율 좋게 생산할 수 있는 진사안료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2005년 7월 조선백자진사안료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를 특허등록해, 2006년 연구 내용을 후학들을 위해 공개했고, 2007년에는 순도 높은 금(24K)을 이용해 붉은색을 내는 황금진사안료를 명지대학교와 함께 연구해 발표하기도 했다.

전시회에서 선보인 진사 작품들을 보면 붉은 매화(홍매)를 비롯해 붓꽃, 모란, 국화, 연꽃, 백합, 장미, 홍시 등이 백자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붉은색이 선홍(鮮紅), 진홍(眞紅), 심홍(深紅)을 띄며 온몸을 태워버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