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환 극동대학교 겸임교수

지난 주 이천과 여주에서 하이닉스가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나 큰 만큼 여주이천의 경제를 안정시키고 향후 성장시키기 위해 모든 여주이천 구성원들이 정부의 하이닉스 매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기업하나 유치하려고 시장군수가 발 벗고 나서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직접 고용 1만 2천명, 분사한 협력 업체 고용 8천명으로 이천공장에만 2만명(여주지역 주소 거주자도 최소 8백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하이닉스를 바르게 지켜내는 일은 그 어떤 기업유치보다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서울서는 지난주에도 하이닉스를 둘러싸고 정재계가 요동쳤습니다. 하이닉스의 2대주주이자 채권단을 대신해 하이닉스 매각을 지휘하던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매각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만뒀는데요.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권한을 갖습니다. 그만큼 현 정부에서도 하이닉스 매각을 부담스럽게 여기며 예사롭지 않게 바라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력한 인수후보 SKT는 입찰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하이닉스 매각이 구주 우선 그러니까,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가격 높이기에만 매몰되면 인수전에서 빠지겠다는 겁니다. 더구나 SKT는 8월 29일 정부의 주파수 경매에 나서 1.8GHz 대역 주파수를 1조원(정확히 9천950억원)에 낙찰받았습니다. 하이닉스 인수자금을 2-3조원대로 본다면 SKT가 갑자기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일단 의문이 들죠.

이런 저런 이유로 11월 매각 완료 일정은 불가피하게 늦춰질 전망입니다. 먼저 정부가 하이닉스 매각 전반을 재검토 한 뒤, 정책금융공사 사장을 임명하고 나서야 추진되겠지요. 우리 이천여주로서는 그만큼 시간을 번겁니다. 이때 지역에서도 나서줘야 하는 것이죠. 우는 아이 젖 준다고 하는데, 사실상 이천여주 지역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다고 할 하이닉스 문제에 아무런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정부 임의대로 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죠. 26일 이천 공장에서 권오철 사장 등 간부들이 모여 ‘비상경영 선포식’을 가진 하이닉스와 머리를 맞대야죠. 지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하이닉스와 일심동체라는 인식을 심어 줘야죠.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혹시 마음으로라도 도울 일이 없는지 찾아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는 안 됩니다.

과거 쌍용자동차를 중국계 기업에 잘못 매각했다가 회사 문을 닫은 것은 물론, 이로 인해 평택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대우건설을 인수해 중동계 투기자본에 매각하려다 좌절된 금호 아시아나 그룹이 그룹 자금난 타개를 위해 금호타이어를 희생양 삼아 구조조정하면서 광주 경제가 침체된 것도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노사분규의 한진중공업 사태로 대한민국 정재계가 들썩들썩한 것은 물론 부산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기업은 더 이상 기업 혼자가 아닙니다. 지역경제와 함께 가는 동반자입니다. 더군다나 이천여주처럼 경제의 거의 대부분, 아니 상당부분을 하이닉스라는 특정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이닉스 노조 대책위가 “정치적 수단에 악용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기에... 하이닉스 지분 매각이 국가의 발전, 임직원의 발전, 첨단기술의 발전이라는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매각에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겠죠.

첫째, 인수자금에 대한 철저한 검증, 즉 투자자의 실체가 공개돼야 합니다. 둘째, 돈만 대는 재무적투자자(FI)의 경영권 확보에 대한 규제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인수의사를 밝힌 STX는 중동계 펀드와 재무적투자자 자격으로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뿐 아니라 앞으로 해외펀드가 재무적 투자자 자격으로 국내업체와 입찰에 나설 수 있는데요. 규제가 미약한 틈을 타 경영권을 장악한 뒤, 펀드 특유의 속성대로 ‘이문 남겨 되팔기, 즉 먹튀’에 골몰할 경우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하이닉스와 이천여주 경제에는 재앙이 되고 맙니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정부로부터 인수해 돈방석에 앉은 펀드 론스타 자금의 67%는 정체불명의 투기자금, 나머지 33%는 한국계라고 합니다. 외국은 그렇다 쳐도 한국계는 누구 돈인가요. 과거 정권실세들의 검은돈, 재벌들의 검은 뒷돈...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이런 돈들이 안정적인 경영에 나설 수는 없죠. 땅 사고 팔아 이문 챙기는 것처럼 기업 사고 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기려 할 뿐이죠. 그 과정에 국내 정치 실세나 정부와 검은 유대를 형성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하이닉스 매각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투기 자본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도 하이닉스 주요 채권자인 것은 하이닉스 매각을 왜 두 눈 부릅뜨고 바라봐야 하는 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국내기업과 이에 빌붙은 정체불명의 투기자본. 이들을 방조할 수 있는 정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은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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