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환 극동대학교 겸임교수

1. 장면 1. 이천시 공설운동장 6월 28일 화요일
7일간 잔뜩 찌푸린 채 굵은 빗줄기를 토해내던 궂은 날씨가 이날만큼은 반짝 갰습니다. 푸른 하늘도 산뜻하고 싱그럽게 얼굴을 내밀고요. 한낮에는 장마 끝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햇빛이 내리쬐 무더위가 심했죠. 농사일을 놓고 모처럼 단합의 시간을 갖던 이천시 농업경영인 여러분들의 얼굴은 물론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뒹굴고, 호흡 맞춰 윷놀이도 하고,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하지만, 표정이 밝지는 않죠. 왜 그럴 까요.

2. 장면 2. 여주군 금사면 체육공원 6월 29일 수요일
7일 비오고 잠깐 고개를 들었던 날은 하루만에 다시 물폭탄을 대지에 쏟아부었습니다. 밤부터 서울서 시작된 굵은 빗줄기는 오전에 이천을 거쳐 10시 30분 넘어 여주를 강타했어요. 앞이 안보일 만큼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금사면 체육공원은 남한강가 모래톱 옆에 둑을 쌓고 만든 체육시설이죠. 그래서 지대가 낮고 폭우가 쏟아지니, 금방 천연잔디 구장이 물천지로 변하더군요. 잔디밭이 마치 모심어 놓은 논처럼 아니 수렁처럼 변했습니다. 모처럼 농사일을 손에서 놓고 모인 여주군 농업경영인 회원들은 빗줄기에 온몸이 젖은 채 수렁에 빠져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빗줄기 아랑곳 않고 족구도 하고 여성회원들은 페널티킥 차기도 하고 노래자랑도 했지요. 폭우 속에 우비 입고 집단 가무를 즐기는 저력도 과시했는데요. 여러 행사장 많이 다녀 봤습니다만, 처음 보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얼굴 한구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3. 역사 한토막
여주농업인들의 한마음 큰잔치가 벌어진 금사면에 관련된 역사한토막이요. 금사면에서 물구덩이에 빠져 하루를 보낸 농업 경영인들 생각하니, 금사면에서 물구덩이 빠져 여럿이 죽은 조선 성종때 일화가 떠오릅니다. 1469년. 예종 원년. 예종은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능을 서울 헌릉에서 여흥군으로 옮깁니다. 이때 왕묘가 있는 도시가 군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여흥을 목으로 승격시키는데요. 목이 되려면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아야지요. 그래서 한강 하류에 있던 천령현(오늘날 금사면)의 문을 내립니다. 천령현을 없애고 여흥과 합쳐 여주로 이름을 바꾼 겁니다. 문제는 용도 폐기된 천령현 관아 130칸을 전부 당시 최고의 권세가 한명회에게 준 거예요. 국가 재산을 넘겨주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천령현이 없어져 백성들 피해가 빈발해요. 복하천과 양화천을 건너야 천령에서 구 여흥 그러니까 새 여주관아로 가지요. 천령현의 향리들은 매일 40리 길을 걸어서 출퇴근해요. 장마철 비가 와 물이 불면 빠져 죽기 일쑤여서, 중종 실록에 보면 10년 동안 22명이 죽었다고 전합니다. 민원 불편도 컸어요. 송사가 있거나, 세금을 내거나 주민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이에 1488년 성종 19년 10월 구 천령현 주민들이 천령현을 복구시켜 달라고 청원합니다. 이때 달성군 서거정이 말해요. 한명회의 부인이 아직 생존해 계시므로 안된다. 한명회는 1년전 1487년 죽었지만, 그 부인이 살아 있으므로 그 부인에게서 구 천령현 재산을 환수받을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권신은 죽고 부인만 남았거늘, 권력가의 아내를 위해 현지 주민들의 불편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듬해 6월 그러니까 폐현 20년 만인 1889년 다시 이문제가 불거져요. 이때 사림파의 거두이던 형조판서 김종직이 천령현 복원을 지지한 반면, 우찬성 손순효가 새로 관아를 지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서 손순효의 주장이 채택됩니다.

4. 오늘에 보는 교훈
이천에서 땡볕에 땀에 흠뻑 젖은 농업경영인들, 여주에서 장마철 비에 흠뻑 젖은 채 수렁에 빠져 하루를 보냈던 농업 경영인들. 이들이 애써 즐거운 표정 지으려 하지만, 그 너머에 가린 근심어린 표정이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오뉴월 삼복 찌는 무더위, 장마철 빗줄기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농사짓지만, 현재 대한민국 아니 농업이 근본인 여주이천 농촌 현실이 어떤가요. 쌀값은 떨어지고, 자재 값은 폭등하는데, 그나마 물량이 줄던 면세유는 앞날이 불투명합니다. 올 초 이천과 여주를 초토화 시켰던 구제역 후폭풍은 아직도 많은 농가와 여주 이천 재정에 시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을 살려 달라는 농민들의 아우성은 재벌이나 최고 상류층 세금 깎아 주기에 열심인 다시 말해 힘 있는 사람들 위주 정책과 큰 목소리에 묻히고 맙니다. 조선시대 세도가 위주 정치와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요. 누가 이 현실을 타개할까요. 비 오듯 땀 흘려 일하면서도 농가부채와 소득감소의 수렁에 빠진 우리농촌을 장마철 빗줄기 바라보며 다시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천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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