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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공(陶工)의 이야기

소설 「천년의 만남」을 읽고 이천저널l승인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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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우 강남대 석좌교수(前 이천시장)
1. 시작하는 말
나는 최근 이천시 기획실에서 보내온 ‘천년의 만남(노수민 지음)’이라는 한권의 도예 관련 소설을 밤늦게 읽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책속에는 불후의 명품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는 어느 도공의 애환이 담겨져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인생드라마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개최한 이천시 도예촌과 설봉공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실명은 안 밝혔지만 유추하면 알 수 있는 도자명장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흔히 인격형성을 도자기를 빚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격도야(陶冶)라는 말도 본질적으로 같은 뜻에서 유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도예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도자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대목이 많다. 인간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의 목적과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지침서로서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이천을 세계적인 도자기 성지로 만들기 위해 세계도자기엑스포와 도자비엔날레를 우리지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던 시장으로서 그 느끼는 바가 남다르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작년에는 유네스코가 전국 최초로 우리시를 「창의도시」로 선정하는 영예도 안게 되었다. 이를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차제에 이러한 도예 관련 소설이 등장한 것은 스토리텔링 차원에서 이천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이에 그 느낌을 간추려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스토리의 요지는 도예 명장 해연(海蓮)과 계승자인 딸 연화(蓮花)가 명품도자기를 나오게 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해연의 막내 동생 종주가 6세때 길거리에서 미아가 된 후 미국에 입양,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문화전략팀장이 되어 한국에서 형제가 극적으로 재회(再會)한다. 따라서 그 동안 애증(愛憎)관계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고 용서하며> 이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임을 밝힌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4개국(한·미·중·일) 정상 앞에서 벌이는 시연회 준비에 몰두하던 주인공 해연이 연락을 두절한 채 갑자기 사라진다. 국제적인 큰 행사를 앞두고 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주최 측과 청와대에서는 긴장을 하며, 해연명장 대신에 ‘정산택’이라는 명장을 대타(代打)로 선정하여 그 임무를 수행토록 한다. 이 두 명장은 아주 대조적인 인물로 ‘전자’는 오로지 순수한 도공의 길만 걷는데 비하여 ‘후자’는 처세와 실리(實利)에 밝다. 도공이라면 누구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국제적 시연회를 앞두고 홀연히 종적을 감춘 해연은 민족의 성산(聖山)인 ‘마니산’에 올라 며칠간 칩거하며 하늘의 계시(啓示)를 듣는다. ‘나는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아들었고 멀었던 눈이 뜨였다. 정직한 것만 보이고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촉각으로 느꼈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다.

그는 시연회가 끝난 후 다시 하산하여 작업실로 돌아 온 뒤에도 끊임없이 굽고 깨고 부수는 반복과정을 통하여 딸 연화에게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가르친다. ‘양심을 담는 그릇을 만들어라, 그 그릇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하리라’라고 말한다. 그는 거듭해서 말한다. ‘내 명예와 영욕과 부를 위해서 그릇을 짓지 말고 화합과 용서를 위해서 쓰라’고 한다.

3. 다시 천년후의 만남을 기대하며
그가 재현하려고 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청와대 집무실에 비치한 ‘청자양각호문매병’과 한 세트를 이루는 국보 133호 ‘청자진사연화문 표형주자’의 진품 뚜껑이다. 이 뚜껑 안쪽에는 800여 년 전 몽골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내기 위해 깨알만한 글씨로 ‘佛’을 새겨 넣고 있다. 해연은 이것을 2001년 이천세계도자기엑스포장 곰방대 가마에 전국 100대 명품과 함께 묻는다.

그가 이 진품을 나라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보관해 오다가 이천 도자기엑스포장에 묻은 것은 미국과의 도자문화 전쟁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려는 애국혼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 표주박 모양의 주전자는 조선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들에게 하사주(下賜酒)를 내린 특별한 청자라고 한다. 천년 후 3001년 8월 10일에 개봉되는 이 작품들을 담은 타임캡슐은 이천을 명실 공히 세계적 도자메카로 떠오르게 하는 증표라 하겠다.

인간은 만남으로 시작하여 만남으로 성장하고 드디어 죽음과 만난다. 천년전의 고려청자가 이 시대에서 만나고 또다시 천년 후의 만남을 기약하게 되니, 이는 어느 대중가수의 노랫말처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듯 하다. 그것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대상과 만난다. 스승도 만나고 친구도 만난다. 또한 옛 조상들의 작품과도 만난다. 눈을 뜨면 한 순간도 만남이 아닌 것이 없다. 다만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남」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남」을 거룩하게 하자.

4. 새로운 이천을 위하여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풀어야 할 과제인 듯하다. 주인공인 해연 명장이 이(利)에 영합하지 않고 순수한 도공의 혼(魂)을 불사르는 모습은 물질만능주의 세태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며, 의(義)에 목숨을 걸라(見利思義 見義授命).’는 성현의 말씀과도 부합된다고 하겠다.

은(殷)나라의 탕(湯)왕은 자기의 목욕 그릇에 ‘날마다 새롭게 또 새롭게(日日新, 又日新)’라는 글을 새겨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도 쉬지 말고 새로움을 찾아 노력하라는 뜻이 아닌가. 이천시는 영광스럽게도 민속공예의 창의(創意)도시로 세계만방에 빛을 발하고 있다.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우리는 소설의 주인공 해연, 그리고 계승자 연화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계속 새로움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당위적(當爲的) 사명이며 가능성(可能性)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2011.3.1 이천 설봉산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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