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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아 숨 쉴 지성과 양심의 ‘역정’ 리영희

김문환 전)민주당 여주·이천 지역위원장 이천저널l승인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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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80년대 말, 정확히 88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병아리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저는 한권의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한 기자 선배가 권한 책이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그 책은 제게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독립 우국지사인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싯구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았습니다”라는 표현처럼 “책에 담긴 한 구절 한 구절의 가르침이 기자로서 제 운명의 지침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정(歷程)>>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무작정 기자가 하고 싶었던 제가 장호원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1년 쓰여졌는데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직후 구속된 상태에서 50년 생을 돌아보며 쓴 반 자서전 형식의 양심 고백 에세이로 전두환 정권이 끝난 1988년 출간된 겁니다.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6.25 참전, 기자시험 합격, 이후 올바른 기자가 되기 위해 걸었던 기자 초반 생활이 아주 솔직 담백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겪어야 할 인지상정의 감정부터 숭고한 정신까지 녹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마냥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눈시울도 적시게 만들고, 권총을 들고 기생을 탐하려던 치기어린 청년 장교의 모습에선 웃음도 자아냅니다. 병사들의 보급품을 빼내 팔아먹는 악질 부사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대목에서는 정의가 느껴지고, 기자가 돼 술집에 초대돼 맥없이 탁배기 받아 마시던 대목에서는 동병상련도 느껴졌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우리 아버지와 같은 1929년생이고, 아버지처럼 6.25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웠던 분이란 점은 이후 더욱 친근하게 그에게 다가설 수 있는 개인적 이유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고난 속에서도 양심과 지조를 지키며 진실만을 탐구하고 이를 행동에 옮길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입니다. 그분이 2010년 12월 5일 만으로 그러니까 향년(享年) 81세로 <인생 역정>을 마감하셨습니다.

<<역정>>이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74년 처음 출간돼 유신 독재 치하에서 탄압받은 70, 80년대 지성인의 탐독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서점으로 달려가 구입하고, 1977년 쓴 <<우상과 이성>>, 80년대 들어서 쓴 <<분단을 넘어서>>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이런 책들은 70, 80년대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는 고전이었지만,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낸 원죄의식에 시달리던 저는 학교 문을 나서 사회로 들어와서야 접했던 겁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르는 법”이죠. 90년대 선생이 쓰신 <<자유인, 자유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그동안 목마르고, 또 굶주렸던 진실을 얻고자 하는 욕망, 기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뒤늦은 고민을 리영희 선생의 저작물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권력에서 벗어나 양심을 갖고 진실을 전해야하는 일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언론 철학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평안북도 운산군 출신으로 경성공업고(현 서울공고)와 한국 해양대를 졸업하고, 영어 교사를 하다 6.25가 터지자 통역장교로 입대해 7년간 군 생활을 한 뒤 소령으로 예편하면서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합니다. 조선일보 기자시절인 1964년 ‘아시아·아프리카 외상회의, 남북한 동시유엔가입 추진’ 기사로 구속된 이후 평생 9번 체포되고, 5번 감옥 가고, 언론과 교수직에서 2번씩 4번 해직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독재와 반공이 난무하던 시절 이분법적 냉전 사고에서 벗어나 한미, 한일, 한중관계는 물론 남북 화해, 평화,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방향성을 제시한 진정한 지성인 리영희의 책이 뿌린 사상의 씨앗이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란 튼튼한 나무를 만들어 줬고, 이런 목재를 기반으로 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 정권이란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겁니다. 리영희 선생의 글을 되새기며 그가 묻힌 광주 민주화 운동 묘역을 조만간 찾아볼 계획을 세워 봅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끝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발전과 해방, 사회적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이천저널  icjn@par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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