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개 영어를 ‘아주’ 잘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 예를 들어 미국사람이나 영국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들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어야 하고, 어려운 영어 단어도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처럼 혀를 ‘제대로’ 꼬부려서 발음해야 하고, 일상적인 관용어도 많이 외우고 있어야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A와 B의 대화를 봅시다.

A: What is that animal?
저 동물이 뭐에요?
B: It is a Bactrian camel.
저건, 쌍봉낙타입니다.
A: Camel?
낙타요?
B: A camel is a large animal that lives in deserts and is used for carrying goods and people.
낙타는 사막에 사는 큰 동물입니다. 물건이나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구요.
A: Ah... but what is a Bactrian camel?
아 그렇군요. 그런데 쌍봉낙타는 뭐에요?
B: Camels have long necks and one or two lumps on their backs called humps. A one-humped camel is Arabian camel and a two-humped is Bactrian camel.
낙타는 긴 목을 가지고 있고 등에는 험프라고 불리는 혹을 한 개나 두 개 달고 있어요. 혹을 하나 달고 있는 낙타는 단봉낙타라고 하고 혹이 둘 있는 낙타는 쌍봉낙타라고 합니다.

위의 대화를 보면, A가 B에게 낙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아마도 A는 낙타를 처음 본 것 같고 영어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A는 ‘camel’이란 영어단어도 모르네요. 하지만 B는 낙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A의 질문에 쉬운 말로 잘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A는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같은 비영어권의 사람이고 B는 영어권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A와 B는 별 무리 없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영어권의 사람과 영어권의 사람이 만났을 때 필요한 것은, A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과 B가 가진 ‘친절’과 ‘소양’입니다.

영어를 오래 공부한 사람도 위의 대화에 나오는 ‘단봉낙타’나 ‘쌍봉낙타’의 영어단어를 알고 있기는 쉽기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이 이런 어려운 영어단어를 일부러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소통에는 언어 능력보다 ‘내용’과 ‘배려’가 있어야

영어는 언어입니다. 언어의 첫째 목적은 의사소통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의사소통입니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소양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시다.

어느 날 철수는 설봉산 자락에 있는 설봉서원에 놀러 갔다가 외국인을 만났습니다. 그 외국인은 이천의 풍취에 매료되어 자꾸만 철수에게 설봉서원에 대해 묻습니다. 하지만 철수는 별로 해 줄 말이 없습니다. 그 외국인이 철수에게 바라는 것은 어려운 영어단어와 유창한 회화실력이 아니라 설봉서원에 대한 ‘내용 있는 정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철수는 자신의 고장에 있는 ‘이 멋진 곳’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설봉산 영월암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설봉서원은 조선 명종 19년 이천부사로 부임한 정현공이 지금의 안흥지 주변에 처음 세웠는데,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 열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안흥정사라 했으나 선조25년 설봉산 아래로 옮기면서 설봉서원으로 명명했습니다. 지난 4월 13일 복원되어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지난 5월 10일자 이천저널에, 복원된 설봉서원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글로비쉬(Globish)란 말이 있습니다. ‘Global’과 ‘English’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인데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영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글로비쉬는 약 1,500개 정도의 영어단어와 간단한 문장구조 몇 가지로 구사하는 영어입니다.  글로비쉬식 영어에서는 mother-in-law(장모, 시어머니)같이 약간 까다로운 단어는 wife's mother, 혹은 husband's mother 같은 식으로 풀어서 사용합니다. 즉 어려운 단어는 쉬운 단어로 풀거나 재조합하여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단봉낙타나 쌍봉낙타의 경우도 글로비쉬식 영어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인이 되자

높은 영어의 벽에 질려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영어를 공부를 해보십시오. 그러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고 외국어에 대한 친근감이 생깁니다. ‘쉬운’ 영어를 공부할 때 귀를 여는 듣기연습(listening)은, VOA(Voice of America, 미국의 소리)방송처럼 기본 단어로 뉴스나 시사를 전하는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좀 더 고급스런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보다 영어를 비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혹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는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 ‘한국식 영어’, ‘일본식 영어’처럼 각 지역의 문화나 언어습관이 반영된 다양한 ‘지역영어’가 생겨나서 어떤 영어가 표준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물론 영어권의 나라로 유학을 갈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전문 통역인 또는 외교관 등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영어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겠지만, 자신의 진로나 적성에 대한 고민에 앞서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영어에만 매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습니다. 내용 없이 말만 잘하는, 혹은 말을 배우려다 말도 내용도 모두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나아갈 분야에서 핵심이 되는 지식과 소양을 충분히 익히면서 그에 필요한 만큼의 외국어 실력을 쌓는 것이 여러 모로 효율적인 공부 방법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과목을 조화롭게 공부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과 이웃에 대한 소양을 꾸준히 닦아서 ‘내용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