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식민지형 철도의 전형이자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수단이었지

“우리나라에 등장한 근대 철도를 두고 ‘식민지 백성의 삶을 덮친 양날의 칼’이라 한 표현이 있어.”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이라는 책에서 철도를 중심으로 근대성과 식민성의 의미를 물은 말이지. 철도가 한편으로 근대 문명의 축복이면서  제도적 폭력의 서막이었다는 거지.”

“춘원 이광수 선생도 <무정>이라는 소설에 철도라는 공간을 등장시켰어. 조선을 하나의 지리적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거지.”

“등장인물들이 부산-경성-평양을 철도로 오가면서 조선이라는 공간의 실체를 경험하는 거야. 부산에서 일본, 미국 ,독일로 나갔다가 다시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서 조선으로 돌아오지.”

“그때 철도는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계가 아니라는 말이지. 서구문명을 상징하는 기계, 선진 문명을 싣고 가는 전도체라는 거야. <무정>의 인물들은 기차에 오르면서 전 시대의 의식과 단절하고 선진 의식을 지닌 계몽적 지식인으로 변하지.

“철도를 봉건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근대인들의 통과 의례 장소라고 봤단 말이지.”

“100년 전에 조선에 놓인 철도는 식민지형 철도의 전형이었어.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수단이었던 거지.”

“구체적으로 경원선과 함경선이 개통되면서 조선의 지하자원이 고갈되었어. 호남선은 전라도 곡창지대의 식량을 일본 본토로 넘기는 데 동원됐고.”

“우리 땅에서는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 사이에 처음 철도가 놓였지. 1905년 1월에 경부선 이 개통된 뒤부터 기차가 전국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고, 100년이 지난 2005년에는 고속철도 KTX가 달리게 되었군.”

“일제가 경부선을 건설한 목적은 뭘까?”

“크게 경제적, 군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봐야겠지. 우선 호남지방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려고 했어. 전라도 군산이나 목포 등의 항구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부산으로 쌀을 옮겨 배편을 이용하려 한 거지. 또 러시아와 충돌이 불가피해져서 많은 군인들을 되도록 빠르게 수송하려면 기차가 적격이었어.”

“그래서 경부선도 최단거리로 놓을 필요가 있었고, 대전과 대구를 지나는 노선이 만들어졌군. 대전을 지나게 된 것은 호남지방과 가까우면서도 철도의 노선이 비교적 짧기 때문이고.”
“철도가 놓인 역 주변의 변화도 요즘보다 훨씬 컸어. 비교적 한가하던 대전의 옛이름은 ‘한밭(큰 벌판)’이었지만 경부선이 놓인 뒤로 급속하게 발전했어.”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 많은 농지가 철로와 역의 터에 들어가고, 대대로 살아온 집이나 조상의 무덤도 사라졌어. 역사의 면적은 몇 천 평에서 몇 만 평에 이르는 것도 있었지.”

“철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철도 공사에 동원되고, 농사짓는 데 사용해야 할 소도 징발되었지. 철도 공사는 철길 주변 농민들에게는 원성의 대상이었어.”

“당시 일제가 놓은 기차에 대한 거부감은 까닭 없이 돌멩이를 날리고, ‘손 감자’를 먹였던 관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 

“당시 전차 선로는 조선인들에게 목침 대용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해. 한여름 밤에 모기·파리떼가 들끓는 비좁은 방보다는 선로를 베개 삼아 야외에서 잠자기를 즐겼기 때문이지.”   “무더운 여름밤이라서 철로를 베개 삼아 잠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 동이 트고 나자 잘린 목이 레일 주변에 뒹구는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지. 광포해진 노동자들은 운이 나빴던 차장을 공격했으며, 전차를 전복시킨 후 불을 질렀다는 거야. 1899년 서울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개설된 국내 최초의 전차가 빚어낸 끔찍한 사고였어.”

“전차가 개통된 지 불과 열흘째 되던 1899년 5월 26일에는 ‘전차 소각 사건’이 일어났어. 종로2가 앞을 달리던 전차가 다섯 살짜리 어린이를 치어 죽인 거야. 이 광경을 목격한 아이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전차에 달려들었는데, 전차는 멈추지 않고 지나가려 했어. 분노한 군중들이 차장과 운전사에게 돌을 던졌고, 차량에 불을 질렀지. 근대 문명의 첨병인 철도와 우리 민족과의 만남은 이처럼 난폭하게 시작됐어.”

“고종은 명성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에 자주 행차했었는데, 미국인이 세운 한성전기회사에서는 서울 전차를 만들면서 고종황실 전용 귀빈차도 제작했지.”

“하지만 막상 전차가 개통되자 황실에선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는군. 전차 모양이 상여를 닮았다고 해서 불길하게 생각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