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논의로 편의와 복지 모두 챙기길

서울시가 지난 10일, 동사무소 100여개를 통폐합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남은 공무원의 재배치 계획도, 4000억 원의 예산 절감 효과도 그다지 귀담아 들리지 않았다. 도시와 농촌 지역은 여러 모로 여건과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경기도가 나섰다. 지난 15일, 경기도는 지자체의 동사무소 통폐합으로 행정 분야별 효율적 관리를 위한 ‘통합 행정’ 방침을 내세웠다.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ㆍ군, 533개의 읍ㆍ면ㆍ동 중에서 도시 지역 207개의 행정동을 대상으로 법정동(81개)에 근접한 수준으로 축소 통폐합하는 방안과 비도시지역까지 포함해 인구 1만 명 이하의 읍면동 133개를 대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는 대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구 1-2만 명 이하 소규모 읍ㆍ면ㆍ동을 통폐합해 광역 동(洞) 행정 체제로 재구축해 ‘행정구역 광역화’를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곧 인구가 적은 읍ㆍ면ㆍ동들을 합쳐 큰 읍ㆍ면ㆍ동으로 만들고, 남는 인력과 예산을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 활용하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민 수가 적은 3개 동을 하나로 합친다. 통합 동사무소 1곳을 제외한 나머지 2개 동사무소 청사를 어린이집 문화센터 컴퓨터교실 치매센터 등으로 전환한다. 또 행정 전산화로 남는 공무원을 사회 복지, 생활 민원, 현장 기동반 등에 재배치한다. 공무원을 증원하지 않고도 저출산ㆍ고령화 대책 등 날로 행정 수요가 늘어나는 복지 분야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효과를 거둔다. 자, 누가 이런 계획을 마다할 것인가.

문제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공무원과, 면사무소는 늘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일부 주민들의 심리적 저항이다. 한석규 경기도 기획관리실장은 “동사무소 통폐합은 해당 주민들의 반발, 관련 예산 확보, 통폐합 공무원 활용 방안 등이 해결돼야만 원만한 추진이 가능하다”며 “동사무소 설칟운영 권한은 전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있는 만큼, 광역자치단체는 지원을 전제로 통폐합을 유도하는 형식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인구가 넓게 분산돼 있고, 역사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읍·면사무소는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말도 흘렸다. 무리한 추진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 전산화로 남는 행정력을 복지 분야에 투입한다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미끼가 그럴 듯하다. 읍면동사무소 통폐합을 적극 추진하는 기초자치단체에 사무소 건물을 복지 시설로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도비로 지원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천의 경우 1만 명 이하의 읍ㆍ면ㆍ동은 호법면(5020명), 마장면(8067명), 모가면(5411명), 설성면(5667명), 율면(3150명) 등 5개 면이다. 또 1-2만 명인 읍ㆍ면ㆍ동은 장호원읍(1만 6222명), 신둔면(1만1045명), 백사면(1만 450명), 대월면(1만 5078명), 중리동(1만 5544명), 관고동(1만 670명) 등 6개 읍면동이다. 결국 부발읍(3만 4720명), 창전동(2만 690명), 증포동(3만 6108명)을 제외한 이천 전지역이 행정구역 광역화 추진 계획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통폐합이 된다면 어떻게 헤쳐 모일까.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설성면ㆍ율면ㆍ장호원읍은 “인구가 넓게 분산돼” 있지만 역사성에서는 문제가 없다. 일제가 행정 개편을 하기 이전에는 음죽현으로 하나의 행정 단위였으며, 지금도 이 지역은 시장을 장호원에서 본다. 장호원읍이 행정 중심이 되고, 설성과 율면 청사는 시민 복지 타운으로 전환된다. 증명서 발급은 시민 복지 타운에 있는 자동 발급기를 이용한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신둔과 백사를 묶고, 마장과 호법을 묶고, 대월과 모가를 하나 면으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공무원의 인사 문제와 지역을 연고로 만들어진 각종 단체들의 혼란은 아직 거론하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는 20개 동사무소를 그대로 둔 채 5개 동씩을 메트로 타운, 한강 타운, 홍대 문화 타운, 월드컵 타운 등 4개 권역으로 묶은 뒤 타운별로 현장 행정 지원 센터를 추가로 설치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동사무소 조직 폐지는 장기 과제인 만큼 일단 주민 편의 증진 차원에서 구청에서만 가능했던 인허가 신고 민원의 일부를 4개 지원센터에서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수원시는 팔달구의 3개 동을 1개 동으로 통합해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6월 중으로 열릴 시의회 임시회에 상정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부천시도 소규모 동의 통폐합을 검토 중이다. 이를 실행하는 수원시 관계자는 “주민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치면서 문제될 부분은 없다”고 한다. 다만 “차후 통합이 되고 나면 지역 사회 단체장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벌어지는 등 일시적인 문제점은 있겠지만 원칙만 잘 세워 보완하면 문제없다”고 말을 잘랐다.

아직 이천시 관계자는 행정구역 광역화에 대해 “지역 특성이나 문화적인 문제로 통폐합은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통폐합을 추진하려면 도시의 기본 계획 문제 등 지역 발전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문제점도 있다”며 부정적인 느낌을 숨기지 않는다.

최우영 경기도 대변인은 “이번 통합 행정 계획은 김문수 경기지사의 행정 구현과 일맥 상통한 것이며, 추진 단계에서 예상되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선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방 행정 조직의 통폐합은 여러 모로 보아 ‘대의’이자 ‘대세’다. 이 흐름에 뒷걸음치지 않고 앞서 가는 것도 지역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