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 협의에서 하이닉스 반도체의 수도권 공장 증설이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하이닉스 공장 증설 문제는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올해 안에 팔당 수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검토를 끝내기 어렵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이천 공장 증설 불가를 시사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15일 '선(先) 청주공장 증설, 후(後) 이천공장 증설'을 골자로 한 3개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 수정 투자 계획을 산업자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권 부총리는 또 “정부는 우선 제1공장이 비수도권에서 즉시 착공되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나갈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 착공이 필요한 제2공장 역시 환경 문제에 대한 검토를 마무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입지여건을 마련, 착공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하이닉스가 이천 공장에 계획한 증설을 1,2차는 충북 청주로 유도하고, 3차의 경우 이천에 증설하되 “상수원 주변 지역의 공장 입지에 대한 규제 개편 작업”이 풀린 이후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노무현 정부는 국가 균형 발전 논리를 앞세워 기업의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성토하고, 이날 오후 배포한 ‘하이닉스의 팔을 비틀지 말라’는 제목의 회견문에서 “대한민국 자유 시장 경제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특히 “하이닉스 공장 증설 원안은 3개 라인 모두 이천 공장 투자였다”면서 “정부는 1차 청주, 2차 청주, 3차 추후 결정이라는 강압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기업이 공장 입지를 선택할 수 없는 나라, 정부가 기업 입지까지 간섭하는 나라가 됐다”고 비판했다.

하이닉스 증설에 따른 환경 오염 논란과 관련해서는 “하이닉스는 친환경기업으로 국가 환경경영 대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며 “구리가 진짜 환경에 문제가 되는지 환경전문가를 모셔다가 과학적, 환경적 사실을 명백히 밝히자”고 공개 TV토론을 제안했다.
한편 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이 ‘불허’로 기울자 이규택 의원과 조병돈 시장이 삭발 의지를 밝히는 한편 이천시범대위는 200여 명의 사회 단체장과 시의원들이 집단 삭발할 것을 예고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태가 이처럼 격화된 원인은 투자 계획을 수차례 유보시킨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다, 이 문제가 지역간의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천지역 민심이 격앙된 것.

조병돈 이천시장은 “권 부총리의 발언 내용은 이천에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며 “이는 국가 경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부 정책”이라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조 시장은 “이 같은 발언을 한 경제부총리는 부총리 자격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조 시장은 “오는 26일 당초 계획했던 상경 집회를 강행하고 직접 삭발식에 참여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허용’을 강도 높게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허용을 촉구해 온 이천 시민들도 이 소식에 “이제 이천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면서, “이천과 청주가 불과 몇 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된다는 건 이상한 논리가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낙후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낙관하던 이천시민들로서는 청주 공장 선회에 배신감이 더 컸다.

이에 이천시범대위도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26일, 예정됐던 상경 집회를 강행키로 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과 세종로 종합 청사로 나뉘어 열릴 이날 집회에는 버스 100여 대를 동원해 시민 4000명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