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푸른 학교에는 주로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이 오후에 모여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놀기도 함께 하고 밥도 같이 먹는 공동체다. 대가족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고 소가족도 해체되어 이제는 다양한 가족 형태로 살아 간다. 한솥밥 먹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했을 때 푸른학교도 대안 가정으로 보아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후 두시 반, 이층 건물의 어둡고 좁은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가니 아이들이 쫓아내려온다. 교장선생님 만나러 왔다니까 뒤돌아 냅다 올라가며 소리친다.
“선생님, 누가 왔어요”
푸른학교 교장 강연희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난리법석이다. 택견복을 입은 아이는 날렵하게 텀블링을 하면서 방안을 가로지른다. 얼굴이 동그란 남자아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루돌프 코는 개 코라고 가사를 바꿔 부르며 우리 주변을 빙빙 돈다. 찾아온 사람이 무척 궁금한가보다. 우리 집 아이나 다른 집 아이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활달한지 공부방이 아이들 에너지로 환하다.
고학년 반인 ‘지혜 반’에서는 역사 수업이 한창이고, 저학년 반인 ‘신나는 반’ 아이들은 할 일이 끝났는지 저희들끼리 떠들며 논다. 오글오글 모여 있는 게 하나같이 예쁘다. 어찌나 떠드는지 다른 방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자리를 옮겼는데 그 방은 냉골이라 몸이 덜덜 떨린다. 교장 선생님은 아주 난처해하면서 난방비가 부족해 아이들 있는 곳만 난방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이천 푸른학교는 사단법인 푸른학교에 속한 이천 지역 아동센터다. 생활보호대상자나 모자가정, 부자가정, 할아버지 할머니 등에 의해 양육되는 결손가정 아이들을 모집해 공부방과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다. 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운영비로는 턱없이 모자라 후원인들의 도움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푸른학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하루에 두 번 학교를 가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매 순간을 즐긴다. 푸른학교라는 공간이 있어서 아이들은 추운 길거리에서 헤매지 않고 서로 모여 돕고 함께 나누는 법을 조금씩 알아간다. 

푸른학교를 돕는 사람들

예비 택견 사범 김정의

푸른학교를 방문했던 금요일에는 택견을 배우는 날이라고 한다. 열 명 남짓 아이들이 김명숙 선생님 손을 잡고 택견 전수관으로 걸어서 운동하러 간다. 창전청소년문화의집 뒤편 주택가에 있는 푸른학교를 출발해서 이천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한전 앞 건널목도 지나서 시민회관 근처에 있는 택견 전수관으로 아주 익숙하고 안전하게 이동을 한다. 전수관에 들어서자 장난이 심하던 남자아이들조차 양손을 모아 공수자세로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뜻밖에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이다. 제일고등학교 1학년 김정의군. 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앞엣걸이를 시작으로 품밟기를 지도하는 자세가 당당하다. 새로 가르치는 택견 동작도 차분하고 엄격하게 지도하는 품이 영락없는 사범이다. 유단자인 정의군은 푸른학교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자율학습을 하루 빠지고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왜 봉사를 하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때부터 택견을 배웠는데 택견꾼으로 사는 게 꿈입니다. 아이들하고 연습하는 것이 좋고 많은 도움이 돼요.” 박주덕 관장님은 “정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택견을 배웠는데 아주 열심히 하고 한결같아서 믿음이 갑니다” 한다. 인솔교사인 김명숙 선생님은 운동하는 한 시간 내내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바이올린 선생님 최현

매주 화요일은 푸른학교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날이다. 푸른학교는 질 높은 문화예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첼로, 플룻, 풍물 수업을 하고 있다. 일 년 넘게 푸른학교 아이들을 만나온 최현 선생님은 ‘최현 바이올린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바쁜 일정 중에서도 푸른학교를 찾아와 봉사한다.
“아이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껴요. 처음에는 말도 잘 안하고 겉돌았는데 이제는 날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장난도 쳐요.”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라 사람을 잘 안 믿는 모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더니 이곳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우리 아이를 돌봐주는 거예요. 잘 놀아주니까 우리 아들이 푸른학교 오는걸 아주 좋아해요.” 아이들이 속내를 잘 안보여주지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스스로 마음을 열어 보여준다.

우리집 피자 사장님 권오수

‘우리집 피자’ 가게에 들어서니 피자를 만들고 오븐에 굽느라고 젊은 부부가 바쁘다. 푸른학교에 매달 한 번 씩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하자 매우 쑥스러워한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도움줄 곳을 찾다가 가까운 곳에 푸른학교 아이들이 있어 형편에 맞게 나누는 것뿐이다” 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 하고는 사장 권오수 씨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저녁식사 차려드려야 한다고 황급히 가게를 나간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웃으며 “별거 아닌데 아이들에게 양이 적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푸른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워낙 피자를 좋아하고 맛있게 먹으니 권오수 씨 같은 후원인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 내친김에 ‘우리집 피자’ 맛은 어떨지 궁금해서 치즈크러스피자를 사다가 우리 아이들과 먹어보았다. 짜지 않고 담백한 게 맛이 좋다. 가격도 저렴하니 부담이 없다. 권오수씨가 만드는 피자에는 나누는 마음씨까지 어우러져 있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피자보다도 맛있다.

푸른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엄마다. 특히 임승희 선생님은 아이가 세 명이나 된다. 당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맡기고 푸른학교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들이 공부방에 와서 차츰차츰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성적도 오르는 것을 보면 기쁘다고 한다. 저녁밥도 집에서 먹는 것처럼 엄마가 해주는 것 같이 해주려고 음식재료에서부터 조리법 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다. 이곳 아이들은 주로 할머니들이 돌보거나 엄마가 키워도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선생님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정을 주니 어두운 표정의 아이들도 점점 밝아지고 움츠러져 있던 아이들도 기를 편다. 한 아이가 “선생님, 우리 아빠랑 결혼해요”라고 했단다.
푸른학교를 취재하면서 우리 아이도 푸른학교에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난방이 잘되지 않아 춥고 건물이 오래돼서 우중충 했으나 그곳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좁은 곳에서 떠들고 싸우고 북적대도 펄펄 살아있다. 자신의 아픔을 아픔이라고 생각 못하고 그냥 같이 부대끼며 조금씩 풀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는 선생님과 같이 놀아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또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어른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