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월드컵만 존재하고 그 외의 모든 시간이 다 정지한 것 같은 시간들이 지나갔다. 사실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대단하게 인기 끌던 스포츠는 아니었다.

단지 후진국이던 조국이 스포츠에서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내면 애국심에 불타올라 감격해 했던 권투, 태권도, 유도, 레슬링, 축구 등의 운동 경기 종목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4강에 오른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애국심은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발전했고, 역사가 유구하지만 또한 미래로 향한 젊은 국가의 역동하는 뜨거운 에너지가 가끔 한번씩 요동하도록 출구역할을 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잘못된 일도 우리의 축구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놓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 월드컵을 통하여 우리는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심판들과 반칙을 밥먹듯이 하는 상대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은 반만년의 선비정신으로 꼿꼿하게 살아온 우리를 페어플레이(Fair Play)하는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규모와 시민정신 그리고 그런 정열을 한 곳에 모아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것과 도무지 범칙(犯則)하지 않으려는 선수들의 바른 정신은 열심히 싸우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강력한 에너지를 주었으며, 선수들은 지더라도 피하지 않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몇몇 국가의 선수들은 핸드볼 선수인지, 헐리우드의 배우인지, K1 선수들인지 알 수 없었다. 월드컵의 심판들이 정신분열에 편집증까지 가진 환자들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경기들이었다. 그런 국제 대회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제대로 망가질 수 있는지 현장감 있게 보여준 경기들을 통하여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어이없음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쉽게 하나가 되는 민족성을 확인한 기회였으며, 전 세계에 우리의 성숙한 문화를 보여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냄비근성이란 말로 자조(自嘲)하던 국민들이 현실에 관한 수준 높은 이해를 통하여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정말로 자존심을 제대로 세웠으며, 자긍심이 우러나오는 국민들로 거듭났다. 어느 누구는 외국 언론들이 떠들어 댄 우리 선수들의 경기 평에 대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으며, 어느 누구들은 그 정도면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을 했다. 재미있는 건 축구 경기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축구 관전태도에 관하여는 모든 이들이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도 냄비근성이 없는 나라는 없다. 호주만 하더라도 축구는 변방 스포츠일 뿐이었는데도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엄청난 냄비의 끓음과 같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냄비는 정말로 고급스럽고 훌륭한 냄비인 것 같다.

 바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바로 고치며, 쉽게 힘을 결집하고, 경기에 패하자 바로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와 자기의 일에 충실하는 것을 보면 너무도 훌륭한 고전적인 냄비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번 독일 월드컵은 우리에게 또 다른 스스로의 매력을 드러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 우리나라 사람의 성숙한 질서 의식을 보여주었다는데서 가장 커다란 자존심과 자긍심을 느낀다.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야 우리의 그런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폄하(貶下)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형의 재산이며, 그에 감동한 어느 나라의 누가 언제 우리에게 다정하고도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할 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관습들이 많다. 이런 관습들은 우리끼리만 서로 보여주고 느낄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에 보여주고 그들을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되도록 하고, 우리와 더불어 형제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웃인 중국(中國)과 일국(日國)이 우리의 진정한 서포터가 되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