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상환 이천저널 회장

벌써 지금부터 50여 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잔잔한 일상사가 주는 감동을 그렸던 영화였다. 같은 시각으로 우리 주변을 살피면 얼마든지 빙그레 웃음 지을 수 있는 잔잔한 행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거리에 ‘현래장’이라고 하는 중국집이 있다. 이름이 좋다. ‘어진 선비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하여 賢來莊이라고 일컬어진다. 특히 유명세를 탔던 것은 그곳의 주인이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수타국수의 명인으로 바늘귀에 꿸 정도로 세발 수타국수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보유자로 TV에도 소개된 바가 있다.

어느 토요일 오후로 기억된다. 통상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는 그 중식당을 이용한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고량주 1잔에 삼선짬뽕을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대각선 건너편에 삼부자가 식사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현장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마도 근처 직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로 보인다. 아들형제 중 큰아이는 초등학교 3-4학년,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인다. 두 녀석들이 코를 박고 열심히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보기에 귀엽다. 코와 입에 자장면 국물을 뒤범벅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아빠..아빠! 군만두 하나 더 먹으면 안돼?” 라고 하는데 그 모습이 더없이 귀엽게 보인다.

그래서 얼른 주인을 불러 얘기하지 말라고 부탁하며 군만두 한 접시를 그 테이블에 가져다주라고 오더하고 모른 체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누가 보냈는지를 아마도 얘기한 듯하다. 아이들이 입도 닦지 않은 채로 냉큼 뛰어와 90도 인사를 하면서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고 돌아간다. 그 모습이 더없이 귀하고 대견하였다. 별것 아닌 군만두 한 접시가 먹는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바라보는 내게는 흐뭇한 기쁨을 주고 그 아비 되는 사람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일어나게 하고 작은 행동하나가 주변을 화목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또 간혹 사우나시설이 되어있는 근처 목욕탕에 가게 된다. 주말에 가끔 보게 되는 이용객 중 하나였다. 아마도 그 아비 되는 사람은 나보다 연치가 높아서 85세 이후 90세 전후가 아닐까 생각이 되고 아들은 50대 장년으로 보인다. 부자가 와서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물이 좀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탕에 담그게 하고 부축해 나가서 “돌아앉으세요” 하고 살살 아버지의 때를 밀어준다. “이쪽으로 돌려앉으세요” 하며 다시 또 때를 민다. 그리고는 몸을 헹구느라고 바가지의 물을 뿌린다. 혹시라도 물이 너무 뜨거울까봐 손을 미리 담그고 확인한 후에 물을 뿌리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웁구나.

내 경우를 미루어보건대 오랜 동안 생산현장에서 근무하고 미국에 10여년 나가있는 동안 내게도 연치 높은 부모님이 계셨으나 아버님을 모시고 내손으로 때를 밀어드리고 목욕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작은 행동으로 효도가 이루어질 수 있고 잔잔한 감동이 갈 수 있건만 부모의 등목 한번을 못해드리고 보냈던 세월이 후회되고 가슴이 짠하구나.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며 급히 몰아 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세상이 현업을 마감하고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산책을 하게 되니 안보이던 곳이 많이 보이게 된다. 문득 아스팔트 틈 사이를 비집고, 돌무더기를 비집고 베시시 고개를 내밀고 피어난 들꽃을 보게 된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누가 그 존재를 알아주지도 않는데도 돌 틈바구니의 그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생명을 불태우고 꽃을 피우게 하는 생명력과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자연의 질서에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비록 장미가 화려하더라도 온 동산이 장미로만 덮인다면 사람이 미치고 말 것이다. 장미의 화려함도 필요하거니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보이지 않는 들풀, 또 쓰러진 고목, 이 전체가 보이지 않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구나.

한편, 공자의 가르침 중에 우리의 일상사가 되었고 생활의 규범으로 누구나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글귀 중 하나가「從心의 나이」로 해석이 된다. 다 아는 바이나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공자는 인간 70으로 봐서

十有五而志于學 열대여섯에 학문에 들어가고
三十而立 삼십에는 뜻이 바로 서고
四十而不惑 사십에는 권세, 명예, 돈 모든 것으로부터 혹함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다져진 자세를 갖출 수 있게 되고
五十而知天命 오십쯤 돼서는 하늘의 명을 알고 하늘이 내게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도리를 깨우치게 하는 그런 경지를 터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六十而耳順 육십쯤 되어서는 옆에서 거친 소리를 하더라도 그것이 귀가 순해서 다 소화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경지에 가게 되고
70이 대목이다.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칠십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행하더라도 크게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를 얘기하게 된다. 소위 從心의 나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완결되고 큰 시각과 남을 배려하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유유자적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문득 생각해보니 공자가 태어난 2,500여년 전에는 평균수명이 40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몇십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환갑잔치를 크고 자랑스럽게 친인척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70이면 고희라고 하여 더 큰 잔치를 벌였던 것이 우리 일상사였다. 그러나 어느덧 인간백세시대를 맞이하고 보니 60이면 아이들이고, 70도 잔치를 하기가 삼갈 정도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공자가 얘기하는 종심의 나이는 지금 나이로 환산하면 80이상을 얘기해도 좋지 않을까? 80이면 현업에서 다 끝나고 명예, 권세, 재물 등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이 세상에서 내게 남아있는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헤아리게 되고 그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전개하려고 하는 생각을 누구나 갖게 된다. 생각건대 종심의 경지라는 것이 살아보니 공자나 기타 성인만이 달성할 수 있는 높은 경지가 아니고 지금의 나이로는 80이상의 웬만한 자기성찰을 하는 사람은 다 들어갈 수 있는 경지요,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해석이 된다.

왜 그런가. 이미 하고 싶더라도 직장, 사회활동, 금전적인 것, 명예, 권세 등에서 다 졸업한 상태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쇠잔해 들어서 모든 것에 초월한 경지가 되어 진다. 돈, 명예, 권세에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또 한걸음 물러서서 후배들의 나갈 방향을 계도해 주고 격려해 주는 수준에 멈춰야지 앞장서서 이러쿵저러쿵 할 입장이 되질 못한다. 하다못해 젊었을 때에 가장 힘겹고 고통스러운 본능 중 하나가 생존보존을 위한 성욕의 통제, 억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고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것은 졸업을 하게 되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 그 자체로 살피고 관조하게 되지 억지적인 성적인 욕구에 시달리는 것은 대체로 다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저절로 유유자적하고 자연스럽게 이기적인 것 보다는 이타적인 것으로 이 사회에, 이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작은 들풀 같은 그런 길이 무엇일까를 찾게 된다.

여기에 일조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루야마 시게오’의「뇌내혁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십여년 전에 하루야마 선생이 신라호텔에 와서 2년간 연속해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3대에 걸쳐서 의업(醫業)에 종사한 집안인 만큼 그 축적된 내공과 실험정신, 연구의 깊이가 주변을 압도하고 듣는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요약하면 사람의 뇌는 대뇌, 소뇌, 간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마 쪽에 있는 전두연합조직이다. 전두연합에서는 호르몬 분비를 관장하게 된다. 사람이 긴장을 하고, 적과 대결하고 돌파해야 할 때는 근육이 수축하고 힘을 모으고 전신을 긴장하고 폭발력을 갖추게 된다. 이때 동원되는 호르몬이 노르아드레날린이다. 이는 독성이다. 아드레날린 1g이면 쥐 80마리를 죽인다고 한다. 인체도 계속적으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몸을 헤칠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조물주 하나님이 인체를 창제하실 때에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 되고는 바로 SOD(Superoxide dismutase)를 분비한다. 이것은 일종의 중화제다. 어린아이들은 이것의 분비량이 많고 자주 분비가 된다. 그래서 금방 싸우고도 아드레날린 덩어리가 되었다가도 금방 헤헤거리고 어깨동무하고 노는 것은 SOD의 분비로 바로 극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5세가 넘어가면 SOD의 분비가 줄어든다. 80이 지난 우리 나이 때가 되면 거의 SOD의 분비가 없게 된다. 그래서 한번 화를 내면 늙은이들의 화는 여간해서는 풀리지가 않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구조 중 하나가 이런 SOD의 분비에 관련된 사안으로 보인다. 작은 일거리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고, 또 분노의 감정이 풀리지 않게 되면 자연히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악화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반대로 사랑의 감정, 즐거움의 감정, 또 남을 위하는 감정, 감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베타 엔돌핀(Beta Endorphin)이 분비된다. 이것은 면역체계가 더욱 강화가 돼서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는 노래가 있듯이 얼굴을 환하게 만들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여기서 하루야마 선생의 체험적인 감동이 선언된다. 엔돌핀도 SOD가 나와서 멈춰야할 텐데 사랑의 감정의 극치에 들어가서 엔돌핀이 분비가 될 때는 그것이 멈추질 않는다. 왜 그럴까? 다른 것은 모두 SOD가 나와서 중화가 되고 마는데 이런 사랑의 감정의 극치에 들어갈 때는 계속해서 엔돌핀이 분비되더라. 그 원인을 캐고 캐다가 결국 알 수 없어서 붓을 던지며 “이것은 신의 영역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외쳤다.

그래서 성경에서 얘기된 것이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구절이 단순히 교훈을 위한 일상사가 아니고 ‘너희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 여기에 있노라’는 위대한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루야마 선생이 이것을 터득하고 외쳤다. 많은 감동과 이해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6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전두연합에서 관장하는 것이 엔돌핀만이 아니라 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호르몬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인간이 깊은 감동, 새로운 진리의 터득, 부흥회를 통해서 더없이 신령스러운 몸과 마음이 됐을 때, 또는 이타행으로 주변을 위해서, 나라를 위한, 민족을 위한 큰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는 주변 모두로부터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받게 되고 깊은 감동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때는 다이돌핀이 분비가 되는데 엔돌핀 효능의 무려 4,00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을 확인하느라고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살펴보니 다이돌핀이라는 항목이 나온다. 우리의 치유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빠른 길이다. 결국 인간사에서 사망률 1위, 가장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암인데 암은 멀쩡한 세포가 주변의 자극과 반복적인 갈등, 스트레스 등으로 정상세포의 DNA가 변형되어 무한증식을 해나가고 경찰역할을 해 주는 T세포가 내부반란으론 인한 것이기 때문에 적군인 것을 모르고 이것을 처치 못하고 계속된다. 따라서 약물로 치료하는 치료방법만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은 치유야만이 될 수 있다. 치유는 원상회복이다. 이는 자극에 의해서 DNA가 변형되었다면 특별한 자극에 의해서 원상회복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고치는 약물치료를 치료라 한다면 DNA의 원형복귀는 치유라고 하더라. 이것은 다이돌핀과 같은 감동과 감격의 폭포수 같은 세례를 받게 되면 원상회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Good Healing이 여기서 나온 듯하다.

우리 정치가 따분하고 주변을 역겹게 만드는 것은 보기가 지겹다. 아무런 감동이 없다. 내공이 꽉 찬 사람이 나서서 우리 전체의 길을 제시하면서 감동과 감격지수를 높이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모두 나이든 우리 나이의 인생 마지막을 장식해 들어가는 Old Generation이 한번쯤은 되짚어 봐야할 덕목이 아닐까. 여생관리에 만전을 다하시기를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