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민 기자

화덕피자로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하세요

서울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수이자 도공으로 살아 온지 30년, 반평생을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흙을 반죽하고 도자기를 굽던 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흙 대신 밀가루 반죽을 만지고 도자기를 굽던 뜨거운 가마대신 피자를 굽는 화덕 앞에 그가 앉아있다. 뭔가 비슷하지만 전혀 달라 보이는 그림이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인생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피자 굽는 도공 남용호사장의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58년 개띠 남용호입니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진 않지만 서울대교수 출신이고 30년 경력의 도공이지만 그는 자신을 58년 개띠로 소개 한다.

대한민국의 58년 개띠는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일어난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세대를 칭하는 표현으로 쓰이는데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로 치른 세대이고 대학에 진학해서 10.26 과 5.18 을 겪으며 휴교령과 데모로 이어진 1980년대를 보낸 세대, 그리고 가까스로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가 IMF 사태로 실패를 경험해야했던 고난의 세대로 인생의 역경과 변화가 가장 많은 세대를 뜻한다.

남용호 사장 역시 58년 개띠답게 인생의 굴곡과 변화가 많다. 책상도 없는 학교에서 종이와 연필대신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던 유년시설, 가장치열 했던 대입경쟁을 뚫고 서울에 진학했던 학창시절과 도공으로 그리고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던 장년시절, 그리고 도자기 문화의 축소로 인해 사직서를 내고 교단에서 내려와 제2의 인생을 준해야만 했던 시절까지 그의 인생은 대충 훑어만 보아도 굴곡이 많다.

그리고 올림픽대교 헬기 추락 사고로 동생을 잃은 일과 몇 번의 수술을 통해 위암을 극복했던 일 등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더한다면 그의 인생은 한편의 영화와 같다. 그가 자신을 58년 개띠로 소개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가 3개월 전 증포동 2000마트에 위치한 피자집 ‘노릇노릇’의 문을 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0평정도의 작은 가게지만 화덕에서 구워져 나오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피자에는 그의 철학과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처음 피자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도공으로 살아오던 제가 화덕을 직접 만들고 거기에 피자까지 구워서 판다니까 걱정이 많이 됐던 모양이에요. 근데 불쟁이가 불앞에서 피자를 굽는 것이 이상하기보다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웃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평생 도자기를 구우며 뜨거운 가마 앞을 지키던 그가 화덕 앞에서 피자를 굽는다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다. 오히려 인터뷰를 통해 들은 그의 인생 이야기와 지금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가 도자기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평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을 만들어 요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둘째는 위암투병 당시 평소 먹는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피자에는 인공조미료나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토마토 소스와 막걸리로 발효한 도우, 그리고 치즈와 청양고추 마늘 등의 천연의 재료만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름지고 토핑이 많이 올라가 한 두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른 피자를 주로 접하는데 ‘노릇노릇’의 피자는 기름기가 전혀 없는 담백한 맛으로 재료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 맛본 사람은 기존의 피자 맛에 비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함이 없고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중장년층에 인기가 많은 것이 이곳의 피자다. 6천원~7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인 요소다.

마르게리타피자, 루꼴라피자, 고르곤졸라 등의 이탈리안 스타일의 피자와 해산물과 이탈리아 고추를 사용한 매운 퓨전피자 등이 ‘노릇노릇’의 메뉴들인데 무엇을 먹어도 재료각각의 맛이 살아있고 담백한 맛 때문에 자꾸 찾게 된다.

이 같은 맛의 비결은 우선 남용호 사장이 직접 개발한 화덕에 있다. 기존의 값비싼 화덕의 3분의1 가격으로 제작한 이 화덕은 열관리 능력이 뛰어나 적은 장작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피자를 넣고 3분이면 완성이 되는데 이같이 짧은 조리시간 덕분에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다. 또한 3일간의 숙성을 거쳐야하는 막걸리 숙성 도우는 소화를 돕고 재료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가 피자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셋째 이유는 자신과 같이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58년 개띠 세대들을 위해서다. 사실 그들은 지금 은퇴를 했거나 은퇴의 기로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취업난에 경기 불황 등으로 인해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도 어렵고 취업이나 창업은 더더욱 힘들어 자신의 자릴 찾기 힘든 실정이다. IMF에 이어 또 다른 실현이 그들의 노년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58년 개띠들 정말 힘들겠죠?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예술가는 문화를 창출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교단을 내려와서 보니 죽어가는 도자문화와 58년 개띠 인생들의 영화 같은 삶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2012년 사직서를 낸 뒤 2년간 저렴한 금액으로 창업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고 그것을 통해 도자문화의 활성화도 이뤄질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화덕피자를 통해 은퇴이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도자문화의 부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2~3천만 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화덕피자사업은 기존의 화덕피자가 화덕구입에만 최소 2천 만원 이상을 투자해야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성공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평생 불을 만지고 불앞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덕분에 저비용 고효율의 화덕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 화덕을 통해 건강한 피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도공의 인생을 살다 피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자를 만들기 위해 도공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의 두 삶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전개될지 모르지만 지금 제가 찾은 삶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피자 굽는 도공과 함께 사업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