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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혼(國魂)을 살리는 길

이천저널l승인2015.09.23l수정2015.09.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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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상환 이천저널 회장

간혹 시간이 있을 때 삼국사기나 역사서를 살피게 되면 항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 3국 중에서 가장 국세가 약했던 신라가 어떻게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 통일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고구려는 세계 최강의 당나라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성한 군사대국이었었고, 백제는 해상백제, 문화강국으로 외국과 교역을 떨치던 문화와 해양의 대표적인 강국이었다.

상대적으로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반도의 남단에 위치했고 선덕여왕 치세 시에 대야성을 비롯한 40여개의 성을 빼앗겨 국세가 대단히 쪼그라든 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내공을 갖추게 되었을까?

국토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국세가 상대적으로 떨치지 못했으나 지도층이 집중을 했던 것은 나라의 혼을 살리는데 즉, 國魂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해 마지않았다. 이를 위해서 당시 동양제일의 학자로 칭송 받았던 최치원이 있었다.

그는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 천재성이 당의 으뜸으로 칭송을 받았고 ‘황소의 난’ 때 난을 일으켰던 황소가 그가 지은 격문을 보고 식은땀을 흘리고 자진 굴복했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돌아와서 후학을 지도하며 강조해 마지않았던 것이 국혼, 나라의 혼을 키우는 정신적인 사부였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상마이도의(相磨以道義). 서로 갈고닦아 힘쓰기를 마지않는 것이 도의를 높이도록 하고, 길거리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으뜸으로 도의 제창을 강조해 마지않았다.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함께 가무음곡을 즐기고 노래하고 하늘에 제 지내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기는 이러한 국가풍토를 이룩해 나갔다.

그리고 강조 되었던 것이 유오산수(遊娛山水). 특히 화랑으로 일컬어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나라의 산천경개를 살피고 두루 섭렵해서 심신의 기상을 크게 하고 폭력에 대항하여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지고 삼국을 통일하자는 의지를 높였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의상대사를 통해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설파했다. 즉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섬김에 충성으로 하고, 사친이효(事親以孝) 부모를 섬김에 효도로써 하고, 교우이신(交友以信) 친구를 사귐에 믿음으로써 하고, 임전무퇴(臨戰無退) 전장에 임해서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살생유택(殺生有擇) 생명을 살해할 경우에는 택함을 가지고 하도록 한다.

불가의 고승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살생까지 용인할 정도로 젊은이의 혼을 키우는데 용력을 다 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유전자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도 강강수월래가 전해져 함께 노래하고, 노래방 문화가 크게 발달한 저의는 오랜 우리의 전통이 남아있어서인 것 같다.

다만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함께 가무음곡하는 단체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도 노래방에서 노래는 부르지만 이는 혼자만의 노래지 합창, 군무가 없다. 한때 88올림픽 때 ‘손에 손잡고’를 같이 부르며 마음이 합쳐져 힘의 고양이 생겼으나 다시 사라져 버렸다. 단체노래, 군무 등 단체정신을 발현하여 국력신장을 결집해야 한다.

특히 유오산수(遊娛山水)의 경우도 계속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나는 오랫동안 기업 활동에 매달려 있었다. 직원들의 사상성을 고양하기 위해서 이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백두산 천지에 올라 하늘에 제 지내고 쪽빛 물속에 손과 발을 담그게 하면 더없는 충격과 감동과 내 나라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생각이 넘치게 된다.

조선조에 와서도 어떻게 500년을 지탱할 수 있었을까? 강압으로 3족을 멸하는 폭압정치로 이를 지탱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마이도의 하던 정신이 이어져서 정도전을 통해서 발현되었던 우리의 통치이념은 무엇이었던가?

첫 번째가 仁. 仁之端은 측은지심(測隱之心)이다. 즉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물에 빠지려고 하는 남의 집 아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쫓아가 붙잡는 어진 마음, 측은한 마음. 사회에 이것이 깔려있고 법률 이전에 도의 기반으로 인을 강조해 마지않았다.

두 번째는 옳음을 강조하는 의(義)의 사회. 義之端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의의 으뜸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사회질서를 위해서 이래서는 안 되지 하는 수오지심. 양심이 있으니까 누구나 이는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억제하는데 사회의 문제가 있지 않는가.

세 번째는 예(禮). 禮之端은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예의, 염치, 나보다도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고 상대방에게 순서를 내어주고 내가 물러설 수 있는 사양지심. 법률 이전에 생활 질서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리는 쓰나미로 일본이 더없는 곤경을 겪을 때도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양보를 하고, 사재기를 하지 않고, 내가 필요한 것을 뒷사람을 위해서 최소한으로 확보하던 일본의 사양지심의 극치를 본 바 있다. 비록 상대 국가이지만 우리가 깊이 배우고 존경해야 할 사안으로 본다.

끝으로 지(智). 智之端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옳고 그른 것을 안다. 대세에 따라서 그른 것을 알면서도 수작을 하고 매달리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대장부, 사대부는 이와 같이 仁義禮智를 갖추고자 했었다. 이것을 상징화시키기 위해서 도성을 만들 때 사대문을 만들었다. 예절을 으뜸으로 숭상하는 선비들이 모여든다, 숭례문(崇禮門). 어질인을 숭상하고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비보사상에 따라 여기는 버텨줄 산악이 없기 때문에 갈之 하나를 더 붙여 興仁之門. 그리고 의를 두터이 하는 선비들이 모여들어 돈의문(敦義門). 정의롭고 반듯한 선비들이 몰려온다, 숙정문(肅靖門). 사대문에서 모인 선비들이 보신각에 모여서 33천 제천을 뚫는 인경소리에 맞춰 모여든다, 믿음을 두텁게 한다하여 보신각(普信閣). 왜 믿음을 강조했을까?

안회가 공자에게 묻는다.

“스승이시어.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적으로부터 막아야 하니 兵이 있어야지.”

“또 있어야 한다면 무엇입니까?”

“民은 이식위천(以食爲天)하니 먹어야 살지. 食이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食, 兵이 족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수 없다. 信이다”

안회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나 보다.

“스승이시어. 그 세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다면 무엇을 버리리까?”

“兵을 버려라”

“또 버려야한다면 무엇을 버리리까?”

“食을 버려라. 굶더라도 나라가 되자면 믿음만은 있어야 한다. 믿음이다. 하여 信이다. 無信不立. 믿음이 없는 나라는 안 된다. 믿음이 있어야 모든 인간관계, 사회관계, 나라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 나라의 요체중의 요체이다.”

물론 이것으로 盡善盡美하게 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 500년을 지탱하는 도의의 힘 相磨以道義를 가르쳤고 遊娛山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신을 다스리고 이 역사가 흘러흘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사람의 바탕 仁義禮智는 옛것이라고 버리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중에도 대단히 잘못된 것은 班常을 구별하여 士農工商으로 인간을 차등화 시키고 노동을 경시한 것이 우리나라 쇠망의 원인이 아니었던가. 처음으로 상농공사 그 질서를 거꾸로 세우고 강건한 기풍을 일으킨 것이 박정희 대통령 치세의 20년 동안 우리가 일구어놓은 잘살아보세, 함께 노래하고 함께 노력해서 나라의 기본을 다시 세웠던 것이 마침내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역사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게 됐던 것이 아닌가.

이 기상이 다시 흐려지고 있어서 아쉽기 짝이 없다. 우리의 경우는 이런 상무정신, 독립자존의 정신, 상공농사로 거꾸로 우리의 생산성 증대, 현장근로를 존중하는 이런 풍토로 복원이 돼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가 세계에 내세우자면 홍익인간. 얼마나 위대한 사상인가. 만인에게 베품을 줄 수 있고 이것을 위한 이치의 기본이 재세이화(在世理化)다. 이치가 맞아야 한다. 우리는 부자간에도 “아버지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라고 하며 이치가 안 맞으면 설득이 되질 않는다.

옛것이라고 버릴 것이 아니라 弘益人間, 在世理化, 相磨以道義, 相悅以歌樂, 遊娛山水,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 등 우리가 수천년을 살아왔던 가치규범을 다시 살려서 이들로 하여금 나라에 대한 충성, 내 땅에 대한 애착,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과 더불어 내가 이 땅에 살았으니 이 시대를 위해서 한 역할 해야 하지 않을까 결단을 하고 깊이 통찰하고 자기관리를 도모할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맞아 남북통일이 목전에 도달하게 되어 우리의 내공을 시험받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여기에 대응하는 돌파구가 어디서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적인 함량의 증대, 이타행을 솔선수범하는 훤칠한 품격 있는 인격형성이 우리가 밀고 나가야 할 바로미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모두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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