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춘호 관고동장

처서를 지난 절기는 가을을 손짓하는 데도 한낮의 폭염은 아직도 기세등등 하다.

토요일 아침, 꽤 이른 시간이지만 대전 계족산 삼림욕장 입구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연신 밀려드는 차량으로 근처 주차장 두 곳은 이미 만차라서 2차선 도로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서야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심(대전)에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고 관람객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조성한 등산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곳이 특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계족산 임도를 따라 맨발로 걷기 좋게 조성된 14.5km의 황톳길 때문이다. 이 황톳길은 선양소주의 조웅래 회장이 조성했다.

진로 두꺼비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약간 낯설지만 (주)선양은 대전 충남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소주회사이다. 아무튼 이 길을 조성하게 된 경위가 흥미롭다. 조웅래 회장이 어느 날 계족산을 등반하는 데 어떤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힘들게 걷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신기하게도 꿀잠을 잤고 이는 낮에 걸었던 맨발의 효과 덕분이라 생각하고 전국의 질 좋은 황토를 가져와 14.5km의 황톳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6억 원씩을 들여 황톳길을 보강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함으로써 전국 최장 코스인 치유의 숲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이 길을 네 번이나 걸으며 그 길의 길이만큼이나 길고 많은 생각들을 해봤다. 한 기업가가 수익창출이라는 본래적인 기업가 정신을 뛰어넘어 불특정한 사회구성원들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 눈 돌릴 때 참으로 무한한 공공선이 창출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들 말이다.

산줄기가 닭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계족산은 능선을 따라 백제시대 산성이 축조되어 있고 사적으로 지정되어 산전체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다. 잘 보존된 만큼 풍광 역시 빼어나다. 대부분의 사업가라면 아마 이런 곳의 제한을 풀어 수익성 나는 위락시설 쯤을 생각할 것이고, 다수의 휴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업가들이 몰려들 때 이처럼 풍광 좋은 자연환경은 금방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와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설사 조웅래 회장처럼 맨발의 황톳길을 구상했다 할지라도 요즘의 힐링 열풍을 이용하여 고가의 입장료나 사용료를 받는 '사업'구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웅래 회장은 이 길과 치유의 공간을 불특정의 수혜자들에게 온전히 무료로 내놓았다. 발을 완벽히 보호해주고 편안하게 해준다는 고가의 기능성 신발들이 넘쳐나는 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라면 조금은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맨발로 걸어본 사람들은 다양한 치유효과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는 수많은 전자파, 이른바 자유전자가 존재하는데 이는 백혈병, 고혈압, 암과 같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 땅과 접촉하는 순간 이러한 유해 전자파들은 제로가 되고 음이온이라는 자유전자가 우리 몸으로 흡입됨으로써 자연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Earthing, 맨땅요법).

겉핥기 수준이지만 맨땅걷기의 효과를 몇 가지 나열해본다. 만성통증 감소, 근육긴장과 두통완화, 불면증해소, 면역력 강화, 혈압과 혈류개선, 신경계와 스트레스 호르몬 진정 , 활성산소 제거 등. 가장 주목할 만한 효과는 맨발걷기를 통해 몸속의 정전기를 제거함으로써 잡념과 번민이 없어지는 심신안정기능이 뛰어나다는 것.

우리 선조들은 온전히 땅의 기운을 머금고 살았다. 논과 밭에서 맨발로 일하고 들길을 맨발로 걸었다. 신발이라야 고작 짚신을 만들어 신었는데 이는 땅과 도체가 통하는 소재였다. 그야말로 땅과 늘 접촉하며 땅의 기운 속에 산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에는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불치병이 아예 없거나 훨씬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농촌이 아닌 도심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뒤덮여 땅이 숨 쉴 틈을 완벽히 차단해버렸다. 거기에다 신발재질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고무 밑창을 사용함으로써 땅과는 통하지 않는 절연체이다.

우리를 낳아주었고 다시 돌아가야 할 땅과 일방적 절교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우리시대에 만성질환이 급증하는 시기는 땅과 접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기와 분명 맞아 떨어진다.(클린턴 오버)  맨발로 땅에 서는 일! 이는 땅의 기운을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에서 유입된 혼탁한 기운을 차단하고 자연 앞에 겸허히 서겠다는 곡진함이다. 맨발로 땅을 걷는 일은 지금까지 쫓기듯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고적 성찰이며 이유도 모르고 달려온 삶의 스피드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일은 마치 우리의 완벽한 보호 장구를 하나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겠지만 나는 돈 한 푼 들이지 않는 이 슬로우 라이프 운동을 통해 채우고 올려놓기 보다는 비우고 내려놓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삶의 지혜도 함께 깨달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