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상환 이천저널 회장

■ 시론 

국민적으로 널리 사랑과 존경을 받는 채명신 장군이지만 특별히 개인적인 연이 있어서 우리 자유지성 300인회에는 자주 참여를 하셨고 강연도 몇 차례 했고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친구 문준상 박사의 매부가 되시기에 더 한층 친근감이 있었다. 사석에서 만나 이런저런 세상사를 이야기 하는 가운데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구나 하는 것이 몇 가지 있어 차제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벌써 여러해 전이다. 저녁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세상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본인이 월남 초대 맹호사령관으로 부임을 했을 때에 첫째로 제일 먼저 겪었던 것이 웨스트모어랜드 장군과의 지휘권 관련 협상이었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당연히 자기 휘하의 한 파트로서 수직계열의 지휘를 하고자 시도했다. 이에 대해 채장군은 분명한 주장을 폈다. ‘광의의 총사령관인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의 지휘를 받는 것은 수긍할 수 있으나,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부터 명을 받아 파송되어온 한국군의 총사령관이다.

사고방식도 다르고, 전술전략개념도 다르고, 명령지휘체계도 다른데 미군과 같은 상명하복의 관계로서는 원활한 전쟁수행이 어렵다. 일정영역을 독자적으로 책임 받고 광의의 협력을 유지하는 평등관계에서 지휘권이 보장되어야한다’ 라는 논리를 강하게 주장을 한 바가 있다.

특히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의 월남평정전략은 탐색(search)하고 격멸(destroy)하라. 이것이 기본전술이었다. 탐색을 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수색을 하게 되는데 베트공이 이마에 베트공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길 가던 소녀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치마폭에서 방망이수류탄을 꺼내서 던져 아군이 살상을 당하는 전 국토의 전장화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미군병사가 탐색(search)하는 지휘지침에 따라서 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겠다. 어느 방식이 우선한지는 나중에 비교해서 내가 채택한 방식이 불리하다면 기꺼이 사령관의 지휘지침에 따르겠다. 내 지침은 모택동전술에서 이미 갈파된 바 있다.

나는 오랜 세월을 게릴라전쟁에 참여해서 경력을 쌓아왔다. 모택동전술에서 뭐라 했던가. 공산분자는 인민이라는 물 위에 떠있는 배니까 항시 물과 떨어져서는 배가 뜰 수 없다.

따라서 물과 배를 분리하고 물을 빼면 자동적으로 괴멸되고 만다. 내 지휘지침은 대중 인민들로부터 게릴라를 분리해서 인민대중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Divide and Destroy. 이것은 무엇인가? 인민과 게릴라, 인민과 베트공을 분리시켜라. 그다음 노출이 되면 격멸하라. 인민들의 마음을 사야한다. 중대단위의 전술전략을 구사했다.

가령 미군들이 원조물자 밀가루를 한 트럭 준다고 가정하자. 우선 베트공의 기습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촌로들이 지켜보는 큰길가를 트럭이 달리면서 뒤의 짐 싣는 칸을 번쩍 치켜들면 밀가루가 땅에 일렬종대로 쭉 깔리게 된다. 그리고는 줄행랑을 치고 만다. 받아가는 베트공 촌로들이 더없는 모욕감을 느끼고 밀가루를 가져가면서도 욕을 하게 되고 아무런 원조성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아군은 어떠했던가? ‘백명의 베트공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살상하지 않도록 하라’ 라는 것을 월남전 전체의 지휘지침으로 삼고 노력을 했다.

사주경계를 하면서 중장비로 엄호를 받으며 밀가루나 기타 생필품의 원조물자를 가지고 중대장이 직접 촌장을 찾아간다. 한국식으로 큰절을 하고 통역을 시켜서 “전쟁은 끝나야 한다. 따이한은 이런 사람들. 동양의 유교문화권이 같다. 연장자를 존경한다. 전쟁을 하더라도 먹어야 살 것 아닌가. 원조물자를 가져왔으니 골고루 나누어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부대원들이 한 포대씩 내려서 직접 분배해 나누어주고 격려를 한다.

한 두 번이지만 반복되니까 신뢰가 형성되고, 급하면 따이한부대로 찾아오게 되고, 그 마을을 아군이 엄호경계를 하고 평온을 찾게 되니 산으로 피신했던 가족들이 돌아오게 되고, 정착이 되고, 안정화가 되니까 나중에는 귀띔을 해 준다. 어디쯤에 베트공이 있고 언제쯤 출몰하게 되는지 안다. 이에 대비해서 작은 인력가지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의 search 탐색하라. and destroy 격멸하라. 이러한 전술개념과 Divide 인민과 베트공을 분리시켜라 and Destroy 격멸하라. 이때 핵심은 중대장 휘하의 전술단위, 우리 중대가 지키는 곳은 철통같이 엄호가 되어서 미리 공격루트가 사전 감지되기 때문에 백전백승의 결과를 올릴 수 있게 되고 나중에는 베트공이 따이한이 지키는 곳은 얼씬 못하게 되는 이런 전과를 거두고 따이한의 용맹성을 드높이는 결과가 됐고 이 전략개념, 전술방략의 차이가 독립군 사령관으로써 소신 있는 결단, 이것이 결과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게 됨으로써 웨스트모어랜드장군으로부터 높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 모멘텀이 되었다.

실로 자랑스러운 우리군의 일면이었고 채장군의 탁월한 용병술과 결심, 그리고 어려운 입지에서도 국위를 선양하면서 우리의 피해반경을 최소화 시킨 지략과 장군으로서의 지휘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번은 사석에서 검소하기 짝이 없는 채장군이 저녁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농담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이분이 자랑을 한다. 갑자기 왼손을 번쩍 들고 “내 시계 잘 보이십니까?”

내가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채장군은 늘 검소한 군용시계나 실용적인 값싼 시계를 차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장의 화려한 롤렉스시계라 값이 꽤 나갈 텐데 어떻게 채장군이 그걸 다 차십니까?”
“그런 얘기 나올 줄 알고 내가 이 얘기를 꼭 해야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게 벡텔의 회장이 내게 특별히 준 선물로 여기에는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월남전이 승세를 타고 한국군이 평정한 지역이 평온을 되찾으면서 안정권에 접어들게 되자 한국의 기업인들이 물밀듯이 들어가게 된다. 초기에 우리 기업들은 베트남에 갈 때는 사전에 말라리아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 조차도 몰랐다.

빨간 몸뚱이로 인력인부들을 송출했다.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고 간혹 베트공의 기습공격을 받아 지리멸렬되게 되었다. 하여 우리 대한의 군이 중대단위로 이곳을 엄호하고 물건하역의 루트를 무장군으로 하여금 경호하게 하고 군수물자의 나머지를 가지고 이 사람들의 생존과 군복을 줄여서 입히도록 하여 초기 기업의 월남진출의 맥을 이렇게 이어주었다.‘캄난공사’를 크게 했을 때에 하루는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이 초청을 해서 갔더니 벡텔의 회장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때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이 겸연쩍은 얼굴을 하면서 채장군의 양해를 구한다.

“캄난만 하역의 저 물품들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원체 물량이 커서 그동안 공적은 있으나 한국 업체에 줄 수는 없고 벡텔에 줄테니까 채장군 양해를 해 주시길 바란다.”

채장군이 그랬다.

“아주 잘된 일입니다. 그렇게 하시도록 하세요. 나는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온 독립군의 사령관이다. 우리 동포가 기업을 한다고 와 어려운 고생을 하니 힘닿는 데까지 베트공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주고 그것이 정착화 되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벡텔에서 한다면 미국의 기업을 위해서 따이한이 그것을 지켜줄 의무는 없다. 나도 이젠 자유스럽게 되니까 큰 짐을 벗었다. 잘됐다.”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이 놀라서 묻는다.

“그래도 그 루트를 따이한이 지켜주어서 안정되었던 건데 철수하게 되면 벡텔이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보시오. 사령관. 개념 분명히 합시다. 내가 용병으로 온 사람도 아니고 대한의 독립군 사령관이요. 미국기업을 지키며 그 사람들의 경호 경비를 서려고 이곳 월남지역까지 파견된 입장이 아니란 말입니다. 안될 얘기고 그것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하시고 그 책임 맡고 잘 하도록 하시오.”

벡텔 회장이 사색이 되어서 빈다.

“채장군 우릴 좀 도와주세요. 따이한이 아니면 캄난만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역을 감당을 못합니다. 그 베트공들이 미군이 지키는 것은 우습게 알아서 기습공격을 하는데 우리는 방어를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웨스트모어랜드장군과 잘 상의하도록 하시고 난 일단 손 뗍니다”라고 단호하게 끊고 나왔다. 그리고 경호경비업무에 섰던 부대들을 철수시켜서 사주방어를 더 한층 강화시켰다. 마침내 한 달 이내에 벡텔이 운송 책임을 맡고 하역을 하던 군수물자와 그 루트에서 폭발이 나고 베트공의 기습공격으로 지리멸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루는 허겁지겁 벡텔 회장이 찾아왔다. ‘그때 이 사람이 들고 온 시계가 이 시계요’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얘기다.

“장군님. 코리안이 지키지 않으니 아주 거덜이 났습니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피해를 감당할 수가 없고 더는 감내할 수 없어 우린 다 포기할 테니까 이거 대한민국에서 가져가세요. 우리는 손 떼겠습니다.”

“이보시오. 당신들이 책임을 맡고 한 영역이면 당신들이 다 해야 할 것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리요.”

“아닙니다. 지금 계속하면 손해배상까지 물게 되고 기업이 감당을 못합니다. 우린 철수할 테니까 캄난지역 공사나 이쪽의 물건 하역수송 일체를 장군께 양도할 테니까 그렇게 하십시다.”

사정사정 하는 것을 못이기는 척 하고 받아주고 우리나라 기업에 그것을 넘겨주었다. 기업의 이름은 밝히질 않겠다.

그래서 그 기업이 월남특수의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우리나라 재벌중 하나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월남전전우회가 생기고 거기에 초대 회장으로 채명신장군이 추대 되었다. 채장군에게 부하가 와서 건의 드린다.

“오늘 창립기념일인데 회원들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마라. 나는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아무도 모르고 기업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내가 월남사령관하면서 그러저러한 사연으로 캄난만 공사를 하면서 처음 이쪽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그 기업이 있어. 지금은 재벌이 되었으니 우리 월남사령부에서 맹호군이 키워준 것이나 마찬가지야. 내가 잘 아니까 내 이름으로 가서 얘기하면 TV 30대는 줄 테니까 적더라도 그것으로 경품으로 활용을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부하가 나가고 얼마 후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돌아와 “회장이라는 분을 만나려고 했는데 외국 가셨다고 하고, 회의 중이라고 하고 영 만나지질 않습니다.”

다음번에도 똑같은 현상이 났다. 명백하게 있으면서도 따돌리는 현상이 명확하다. 분노가 산처럼 치솟는다.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가!”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침내 전화로 연결이 된다.

“그대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가! 그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말을 돌리고 장난을 치는가! 당신 함량이 그것밖에는 안 돼? 지극히 유감스럽다. 당신에게 그런 부탁했다는 것을 내 철회한다. 그따위 사고방식을 가지고 무슨 대기업을 운영하는가! 당신네 기업의 장래도 심히 걱정스럽다. 전화 끊는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때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본래 채장군은 독실한 기독교신자고 젠틀한 신사중의 신사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격한 말씀과 격한 언사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얼마나 좌절과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했는지 그 분기가 내게도 전달이 될 정도다.

그 재벌이 지금은 죽었으나 이렇게 졸물스러운가 하고 한탄을 한 적도 있다. 그 유사한 사례를 목격한 바가 있어서 그 인간함량의 크기에 맞지 않는 기업이 유지가 되고 있구나 하는 걱정을 한 바가 있었다.

한동안 종북세력들이 결집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중에 하나가 인천자유공원의 바다를 응시하면서 서 있는 맥아더동상이 그것이다. 좌파난동분자들의 견해로는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이 없었으면 자동적으로 공산화통일이 필지의 사실이었을 터인데 맥아더장군의 세기적인 전략과 과감한 상륙작전으로 허리를 끊기게 된 공산군은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그 후로 맥아더장군에 대한 한을 깊이 감춘 채 기회만 있으면 동상을 끌어내리려는 모략을 획책하였다. 사회세력의 일부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것을 방어하려는 집단화된 세력이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이때 분연히 일어선 것이 월남참전전우회 용사들이었다. 채명신 초대 월남사령관의 지휘통제 하에 신명을 바쳐 맥아더동상을 사수하였다.

어느 날엔가 채장군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우연히 얘기 끝에 듣게 되었다.

“이 나라 국민이 인천상륙의 성과를 모르는 바가 없을 터인데 그 은공을 저버리고 맥아더동상을 끌어내린다면 한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데 활동하는 동지들의 식사 값이 하루 30만원 정도인데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고민스럽다.”

이 소리를 듣고 가슴이 메어지는듯하여 이삼일 후 박태준 회장과 오찬자리에서 말씀을 드렸다. 묵묵부답으로 있던 박 회장이 식사가 끝나고 모임이 파할 쯤 하여 따로 나를 불러 “채장군의 노고가 참으로 크다. 용기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 작은 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뜻과 함께 봉투하나를 건네주었다. 일금 오백만원이었다.

즉시 채장군께 전달했더니 눈물이 글썽하여 박장군의 뜻이 고맙다. 십배, 백배의 용기를 가지고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지키겠노라 결의다짐을 하던 장군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위독하여 임종을 맞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한 층 마음이 처연해 지는구나.

그리고 채장군의 임종 후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모두 장군 묘역으로 가서 화려하게 묘소를 꾸미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인데 대통령께까지 탄원을 해서 “나는 월남군 사망자 사병묘역에 사병과 더불어 묻히게 해 달라.” 이것이 유언이었다. 그대로 실천이 되어서 지금 가면 사병묘역 첫째 줄 가운데쯤에 묘역이 돼있고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 거기 석판에 초대 월남군 사령관 아무개라고 비문을 새기고 끊임없이 꽃다발이 쌓여 있어서 찾기도 쉽다.

현충원을 드나드는 모든 분들은 틈날 때에 반드시 채장군 묘소에 들려서 묵념 한번이라도 하고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장군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긍지와 존경심을 나타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채장군 묘역을 다녀오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깃들어서 몇 마디 적어보았다.

이천저널  icjn25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