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익 재경이천시민회 회장

출근길 라디오 방송에서 자폐 증세가 있는 어린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하는 어느 아버지의 사연을 들으며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손발이 되어주던 아버지는 간암말기 6개월의 시한부 생을 선고 받았다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의 뒷바라지를 더 못해주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는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었다. 하늘은 왜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가정에 더 큰 고통을 주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반면에 얼마 전 부터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어느 가수와 가족 간의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자니 그저 쓴 웃음이 나온다. 호강에 겨워 그러는 것이 아닌가도 싶고 잘잘못을 떠나서 친어머니와의 싸움은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동물도 혼신의 힘으로 새끼를 키우고 자신을 희생 하는 모성을 보이지 않는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하늘이 주신 천륜(天倫)이라 한다. 천륜은 부모와 자식, 형제의 도리다. 하늘이 맺어 주었으니 인간이 끊지 말아야 함을 뜻하며 이를 끊게 되면 패륜(悖倫)이 된다. 최근에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고 부모 자식 간의 잦은 의견 충돌에서 생겨진 갈등으로 마침내는 늙고 병든 부모를 마다하고 길거리에 내다 버리는 천륜을 거역하는 몹쓸 인간들도 생겨나고 있다.

동양의 탈무드로 불리는 ‘채근담’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것은 모두가 천륜의 도로써 비록 이것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놀라운 일이 못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한 쪽에서 은덕을 베푼 것으로 생각하고, 받는 쪽에서 은혜로 생각한다면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의 사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니,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효도, 우애 등은 도덕 이전의 도리인데, 이를 모르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처럼 생색을 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인연이라서 부모와 자식, 형제가 서로 못마땅하고 싫더라도 이 또한 끊을 수 없는 게 운명이다. 그런데도 어찌해서 운명을 거슬리는 ‘원수 같은 자식’이며 ‘패륜’이 등장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천륜을 거스르는 패륜은 사람의 성품, 즉 인성(人性)교육의 부실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다시금 돌아볼 때다. 교육학자들은 효도 교육만큼 좋은 인성교육이 없다고 말한다. 책이나 선생님이 아닌, 부모가 그의 노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에서 자녀들은 효를 배운다는 것이다. 어른의 본보기만큼 자연스런 인성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평생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생에서 잠깐 머물다 가는 것으로 언젠가는 늙게 되고 힘겨운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무례함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비극이 아닌가?

자식에게서 버려진 늙고 병든 노인들이 국가나 사회단체에서 어렵게 운영하는 양로원 같은 곳으로 향하면서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시설이나 재정이 부족하여 이곳저곳에 도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수용되는 노인들 중에는 장성한 자식들이 멀쩡히 살아있거나 가까운 혈육이 사회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음에도 갈 곳 없어 양로원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부모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생명체가 아니다. 부모는 나를 낳으시고 바르고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그 책임을 다하신다.

‘부모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사랑할 의무를 진 사람들이다. 나머지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은 당신이 노력해서 얻어내야 한다.’라던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소중한 분들께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해 보고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에 대한 정성과 효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돌아가신 부모 앞에서 애통해 하며 통곡해도 아무 소용없다. 곁에 계실 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성으로 차려드리는 밥 한 그릇이 더 중요하다.

이천저널  icj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