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일 이천시청 기획감사담당관

학부모를 상대로 “모든 아이들에게 공짜밥을 먹게 해주겠다”는 사람과 “재정형편도 어려운데 그걸 당장 어떻게 다하느냐”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가 더 인기가 있을까?

결과는 불문가지다. 지금 이천시에서는 ‘무상급식’ 확대를 놓고 전면적 확대를 요구하는 교육당국과 당초 합의한 대로 단계적으로 하자는 지자체 간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천시로서는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없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갈등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달 21일 이천교육지원청에서 공사립유치원과 중학교에 ‘무상급식 홍보물 배부 및 홍보계획 알림’ 제하의 공문을 발송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천교육지원청은 해당 공문에서 “도교육청의 역점시책인 무상급식이 이천시의 대응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며 각 가정에 전단지를 배포하고, 학교별로 학부모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계획과 친환경무상급식추진협의체를 구성하여 노력할 테니 학부모들이 적극 지원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지자체 무시, 왜곡된 홍보와 선동 ‘도 넘어’
이는 마치 이천시가 무상급식을 전혀 하지 않는 지역으로 왜곡된 홍보를 하는 것도 모자라 교육당국 주도로 협의체를 구성해 그들을 앞세워 지자체에 압력을 가하고, 노골적으로 학부모를 선동하는 내용이어서 지극히 이성적이어야 할 교육당국의 행정이 맞는지 몹시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우리시는 당초 교육당국과 합의한 대로 올해 초등 전 학년에 대해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2009년 8월 교육지원청과 시, 시의회,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무상급식추진단의 합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우리시는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차질 없이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전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전면 확대시기를 앞당겨 문제를 촉발시켰다. 그리고 애초 계획에도 없던 유치원까지 시행할 것을 하급기관에 지시하듯이 일방통보하여 재정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천시의 자치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전후 사정이 이러한데도 교육당국은 이천시 때문에 지역 학부모들이 무상급식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모든 책임을 이천시에 떠넘기며, 학부모와 이천시를 이간질하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 약속을 어긴 것은 교육당국. 이천시는 어긴 적 없어
교육청이 이처럼 무리수를 둬가며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학생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교육감의 공약사업이기 때문인가?

교육청은 문제가 된 공문에서 “도교육청의 역점사업”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천시의 비협조를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도교육청의 역점사업은 지자체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인가? 2010년 초에 도교육청과 이천시의 합의로 추진되던 도립이천도서관 건립을 불과 1년도 안 돼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저버린 것이 교육당국이다.

그리고 과연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것이 교육당국의 최우선 사업이고 그렇게 시급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현재도 이천시 초·중·고 전체 학생 중 20%이상은 저소득층 또는 담임교사 추천에 의해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요구하고 있는 무상급식 확대 예산이 당장 지원을 해야 할 만큼 시급을 요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무상급식은 안돼. 단계적 확대해야
우리시는 중장기 교육발전종합계획에 따라 인재육성사업에만 2008년부터 5년간 60억원을 지원했고, 올해 교육지원 총예산은 66억원, 지난해에는 무려 98억원을 지원했다. 이러한 사업에는 급식시설보수, 학교환경개선, 기숙사건립, 도서관지원 등 학생편익시설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올해 무상급식이 확대되면서 교육청에서 지원하던 컴퓨터 지원사업이 중단됨은 물론, 25개교에 지원되던 원어민보조교사지원, 소규모학교 살리기, 좋은학교 만들기 사업이 전면 중단됐고, 시설보수예산이 크게 삭감되어 일부학교에서는 비가 새는 급식시설에서 학생들이 밥을 먹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청의 무상급식 확대정책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탓이다.

유치원부터 관내 초·중·고 전 학년에 무상급식을 시행하려면 연간 약 80억원이 해마다 소요된다. 이는 시 가용재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구제역사태로 이천시는 100억원의 지방채를 신규 발행했고, 현재 순수 채무는 630억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빚을 내서라도 인기나 얻으려고 “공짜밥”을 먹여야 옳은가.

◆ 무상급식이 교육사업의 전부는 아닌데 갈등유발 아쉬워
만약 교육당국의 요구대로 무상급식을 전면 확대할 경우 우리시는 한정된 재원으로 교육환경개선사업이나 인재육성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따져볼 일이다. 무상급식만이 교육사업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도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간접적인 피해까지 면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34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스웨덴과 핀란드 2개국만이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할 뿐 미국, 영국, 일본은 물론, 국민소득 5만불의 도시국가인 싱가폴조차 전면 무상급식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교육이나 복지에 관한 재정은 지자체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가재정으로 보편적으로 시행함이 옳다. 지자체마다 분명 여건이 다른데 사정에 따라 어디는 하고 어디는 하지 않는 이러한 시책은 사회적 갈등만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천저널  icj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