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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신문을 알고 싶어요

이천저널l승인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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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란? NIE는 Newspaper In Education 의 약자로 ‘엔 아이 이’라고 읽으며 ‘신문활용교육’을 뜻한다. 다양한 소재와 생생한 신문의 기사와 정보 및 사진, 광고, 그래프의 내용을 교육 부교재, 또는 학습 자료로 활용해 구술, 서술, 논술, 토론, 독해 등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방법이다. 미국에서 체계화하였으며 현재는 전 세계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활성화되고 있다.

1. 왜, 신문인가?
오늘날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표적인 신문과 방송은 그동안 인간의 질을 높이고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해줬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뉴스와 기사 정보 및 광고로 말미암아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만큼 매스미디어가 인간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래도 신문은 가장 지성적 미디어이다. 신문을 읽는 주된 이유는 새로운 정보와 뉴스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리고 신문에서 쌓은 지적 능력을 사회에 활용한다. 왜, 신문인가?
1) 종합적 정보를 제공한다.
2)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3) 늘 최첨단과학 기술과 함께 한다.
4) 과거를 저장해 거울삼고, 미래를 활짝 열어간다.
5) 광고를 통해 생활의 발전과 삶의 질을 높인다.

2. 세계신문의 역사
1) 인류 최초의 신문은 기원전 59년에 로마 광장에 등장한 ‘악타디우르나(Acta Diurna)’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집권자의 행정 방침과 포고령, 의회상황, 검투사 결과 등을 일반에 알리기 위한 일종의 공고문이었던 것이다. 형태는 돌이나, 철판에 글씨를 새겼다. 그리고 그 내용을 베낀 후 로마 전역에 전달하기도 했다.
2) 1609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주간신문 ‘렐라치온(Relation)’이 등장하고, 이어 1660년 최초의 일간신문 ‘라이프치거 차이퉁겐’이 발간됐다.
3) 영국 최초의 일간지는 1665년 1월 7일 헨리 머디맨이 펴낸 ‘런던 가제트’이고, 1702년 ‘데일리 쿠란트’가 그 뒤를 이었다.
4) 미국 최초의 정기물은 1704년 4월에 발간된 주간지 ‘보스턴 뉴스레터’다. 이후 1783년 미국 최초의 일간신문 ‘펜실베이니아 이브닝포스트’가 등장했다.
5) 프랑스 최초의 일간신문은 1777년에 창간된 ‘주르날 드 파리’이다.

3. 한국신문의 역사
조선 15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관보(조보)성격의 기별(寄別)이었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을 각 관청의 기별서리들이 손으로 베껴서 서울과 지방의 각 관청과 양반층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왕의 동정과 관리등이 대 부분이었고 특별한 경우에는 백성들이 알아야 할 사회의 이슈도 다루었다.

1) 한성순보 : 우리나라 공식적인 첫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된 한성순보였다. 조선이 근대화되려고 박영효를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시켰을 때 박영효는 일본의 신문 발행을 보고 인쇄공과 기술자들을 데려와 신문이 무엇인지 설명했고, 나라에 허락을 받아서 이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성순보는 정부기구인 박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개화파들이 국민에게 외국의 사정을 널리 알려 개화사상을 퍼트리는 데 큰 목적을 두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일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은 10일에 한 번씩 발간하는 순보(旬報)였다. 신문의 성격은 순보서(旬報序)에 밝힌 바와 같이, ‘외국 신문을 많이 번역해 게재하고 국내 사건도 실으며,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해서 취사선택하도록 했고, 신문으로서 바름(正)을 견지할 것’을 강조했다.

2) 한성주보 : 3년 뒤 정확히 1886년 1월 25일에는 한성순보의 동생뻘인 한성주보가 창간됐다. 이 신문도 한성순보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두 신문에는 국내의 사건도 있고, 외국 신문을 번역한 기사도 많았다.

3) 독립신문 : 1896년 4월 7일에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4,400원을 자금으로 받아 만든 독립신문이었고, 이 독립신문이 우리나라 첫 민간신문이었다. 독립신문의 역할은 국내와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을 알리고, 나라의 잘못을 지적하며 국민의 단결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또한, 조선의 어려운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4) 황성신문 : 주2회 발행되던 ‘대한황성신문’을 인수하여 ‘황성신문’이라고 개제했다. 사장은 남궁억(南宮檍), 총무는 나수연(羅壽淵)이었고 편집진은 한국학에 조예가 깊고 민족주의적 사관을 지닌 박은식·장지연·신채호 등이었다. 창간사를 통해 한문을 이해하는 특권층만 대상으로 하지 않고 국한문을 써서 일반대중의 지식계발을 꾀하려 한다고 밝혔다. 타블로이드판 전체 4면으로, 1면은 논설, 2면은 국내외 기사 및 잡보, 3~4면은 광고로 꾸민 결과 광고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5) 독립신문이 만들어지고 8년이 지나자, 대한일보와 대동신보가 창간되고, 잇따라서 국민신보와 대한신문이 만들어졌다. 모두 다 신문으로 널리 발행됐다.

6) 1920년에는 조선일보, 시사신문, 동아일보, 이렇게 3개의 민간지가 창간됐고, 1924년 3월에는 시대일보도 창간됐다.

   
▲ 강정구 (NIE 연구원.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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