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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맞은 이천초등학교 ‘그때 그시절’

오는 5월 15일 이천초교 ‘100번째 생일파티’ 한송이 기자l승인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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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초등학교가 오는 5월 17일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 100년의 세월 동안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까지 이천시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겪어왔던 이천초등학교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그에 따라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 이천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성대한 기념식을 열어갈 예정이다. 이천시민들과 함께 해오면서 수만 가지 추억을 만들었을 이천초등학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되짚어본다.

 

   
▲ 일제시대 당시의 이천초등학교 전경.
▲학생들의 넘치는 교육열 ‘후끈후끈’

산 넘고 물 건너…. 이천시민들의 공부를 향한 강한 투지.
이천초등학교는 식민지 시절 일제의 공교육 체제 강화에 따라 전국의 모든 군과 면에 한 개 이상의 초등교육기관을 수립한다는 일군일교, 일면일교 정책이 추진되면서 1911년 5월 17일 탄생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초등학교도 시험을 통해 입학해야 했다. 이는 이천의 유일한 6년제 학교였던 이천보통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육에 대한 열망은 높아졌지만, 총독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보통학교를 충분히 증설하지 않아 학생을 수요할 교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주변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배증개(증포동), 갈뫼(갈산동), 구작골(송정동)을 비롯해 멀게는 호법, 백사 등에서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먼 거리를 걸어 다녀야만 했다.
특히 복하2교가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부발권에서 통학하던 학생들은 한겨울에도 버선을 벗고 맨발로 개울을 건너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31년 이천과 여주의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수여선이 운영되기 시작하자, 그것을 이용해 무임승차로 통학하는 학생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1942년 이천초등학교 동편 강당에서의 검도부 활동 모습.
▲다양한 특기활동 ‘꽃피는 즐거움’

일제시대 말엽 이천군청에서는 특기반을 설치해 학생들이 유도, 검도, 나팔, 스모 등 5~6가지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검도 등 운동은 유단자인 교사나 교장이 가르쳤으며, 이천보통학교 내에서 주로 활동이 이루어졌다.
또 일제강점기에도 소풍은 봄과 가을에 설봉산, 효양산, 학교 뒤쪽의 배수지, 복하천 등으로 갔으며, 간혹 아리 솔밭이나 도드람산으로 가기도 했다.
요즈음의 소풍은 체험학습이라 하여 학습에 도움이 되는 장소를 찾아가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당시의 소풍은 바람을 쐬고 술래잡기 등의 놀이를 하다 오는 정도였다. 그래서 소풍을 산보 혹은 원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학생들이 소풍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점심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이날만큼은 당시 최고의 도시락반찬이었던 계란이나 멸치조림 등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운동회는 매년 가을 있었으며, 복장은 상의 흰색, 하의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운동회에서는 달리기, 무용, 줄다리기 등 59종의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운동회 준비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졸업생들에 따르면, 미술대회나 웅변대회 등과 같은 학교 단위의 예능 대회도 수시로 개최됐다. 이러한 교내 학예 활동의 성과로 인하여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실례로 1929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에는 학생부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천보통학교 박용찬학생의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하였다.

   
▲ 1950년대 이천초등학교 전경.
▲이천보통학교 학생은 ‘애국자’

일제강점기 시절 이천보통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 중 하나로 ‘불온 낙서 사건’이 있었다.
1941년 6월 21일 이천보통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인수 학생이 종이에 ‘조선이 독립된다(朝鮮獨立ナル)’는 글귀를 적어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같은 학급의 일본의 히카와 하쯔꼬 학생이 이를 알게 됐다. 그에 따라 이인수 학생은 7월 3일 이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경기지방법원 여주지청 검사분국 감독서기 가네꼬 칸에게 내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후가 없으며, 이인수 학생이 범죄를 구성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판단,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되면서 이인수 학생은 풀려날 수 있었다.
한편, 이천보통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중 대표적인 사람은 이수흥 열사가 있다. 3.1운동 당시에는 이천보통학교 학생 신분으로 4월 2일 장날에 ‘이천읍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강문형(당시 16세), 최종석(당시 16세), 서석운(당시 14세)이 있다.

   
▲ 1960년대 이천초등학교 전경.
▲전쟁과 함께했던 ‘아픈 역사’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속에서도 이천보통학교의 학구열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때문에 이천보통학교는 1950년 6월 25일 전쟁발발로 휴교했다가 같은 해 11월 1일 재개교, 같은 해 12월 10일 중공군 개입으로 휴교했다가 이듬해 6월 15일 재개교하는 등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휴교령을 내렸다가도 조금만 평온한 상태가 되면 재개교를 통해 학생들의 학구열을 충족시켜줘야 했다.
전쟁으로 인해 재개교를 할 때마다 학교 비품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수업에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학구열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지 못하면 마을회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등 대체장소를 마련해 공부를 꼭 끝마치도록 했다.
41회 졸업생인 이인하 동문은 “2학년 여름 6.25 사변이 터졌고, 이듬해 1.4 후퇴 때 충청북도 괴산으로 피난을 갔다 오니 학교 본관이 불에 타서 전소 되어 있었다”며, 그 때문에 “3학년에는 증일동 마을회관 사랑방에서 수업을 했으며, 4학년 때는 율현리 마을회관에서 수업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동문은 “5학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본교로 다시 돌아와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며, “전쟁으로 인해 공부하는 장소가 여러 번 바뀌기는 했지만 다들 공부에 대한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 현재의 이천초등학교 전경.
▲근대 교육으로의 ‘비약적 발전’

전쟁이 끝난 1960년대, 이천보통학교에 근대 교육이 발을 들였다.
요즘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듯 당시에도 알림장이 있었으며, 학생들은 매일 숙제로 일기를 써야 했다. 또 교과 숙제는 대개 ‘전과’ 혹은 ‘수련장’이라고 하는 참고서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베껴서 내는 학생들도 많았다.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마루나 창문, 창틀 등을 닦고 환경정리를 하는 등 벌로 청소를 하곤 했다.
또 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자 이천보통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이 매일 아침 5시에 모여 자율적으로 거리청소를 하거나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기도 했다. 절약정신을 길러주기 위해 몽당연필 끝에 볼펜을 끼워 쓰도록 하기도 했고, 공책을 아껴 쓰기 위해 글씨를 작게 쓰게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입학에 대비해 매일 시험을 치러야 했으며, 학급에 따라서는 성적순으로 자리가 수시로 바뀌기도 했다. 그와 관련해 각자가 달성해야 하는 책임점수에 못 미친다면 자리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벌을 받기도 했다.

▲“100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이천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교표와 교목을 새롭게 바꿨다.
기존의 교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며 작도가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이천 최초의 공립학교로서의 상징성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이미지로 교체한 것이다.
교목 역시 은행나무에서 소나무로 바꿨다. 교목을 민족문화 100대 상징물 중 하나인 소나무로 바꿔 재도약하는 새로운 100년을 기리고자 한 것이다.
또 4월 8일에는 개교100주년 기념 표석이 세워졌으며, 30일에는 이천초등학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이천초등학교 100년사’를 발간한 발간기념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오는 5월 15일에는 이천초등학교 교정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된다. 기념식이 치러진 후에는 지역민이 모두가 옛날 방식 운동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학교 내에서는 교육과정 운영과 연계하여 100주년 기념 축제 및 각종 문예 행사를 진행해 1년 내내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또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동문들을 연중 초청하여 재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기 위한 강연을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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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기자  uh07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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