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얘기 하다보면 누군들 옛날에 황금 송아지 한 마리 쯤 없었으랴마는 초등학교 시절엔 나도 반장 회장을 줄곧 이어서 6학년(1960년)때는 전체 회장까지 올랐다.
그때 그만 병이 위중하여 이름만 회장이었다가 병원에 실려 가는 불운은 겪었다. 한 학기를 병실에서 창 밖에 풍경만 바라보다가 달랑 ‘전과수련장’ 한권만 들고 2학기를 맞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민주주의’란 말을 들은 것으로 기억된다. 민주주의 방식에 의하여 반장 회장을 선출하는 식이었는데 몇 사람의 추천을 받고 “내가 회장이 된다면…” 하고 1년 동안 반장 회장으로서 직무를 어떻게 수행할지를 발표하고, 그 중 자기들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식이었다.
물론 고득점자가 반장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두 번째 득점자가 부반장 부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 때의 자격 요건은 통솔력과 인화력, 그리고 중상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요즘 아이들 반장 선거처럼 자장면 사 먹이고 치킨, 피자를 돌리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민주주의의 단초가 그때 이루어진 셈이다.

다수결의 원칙, 모든 자유와 주권이 국민 개개인에 있고 그 개개인의 주권의 힘이 모여 모든 의사결정과 앞으로의 진로가 결정되는, 이론적으로 그렇게 합리적일 수가 없는 제도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되어지고 받아들인 이념과 사상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오늘날을 돌이켜 보니 과연 선거철이 다가 왔구나 싶은 징조가 여기저기 보여 진다. 저마다 크고 작은 행사에 자기 연고에 따른 사업개발이 발표되고 특히 눈에 띄는 토목공사가 골목골목까지 펼쳐진다.
더군다나 기득권을 쥐고 있는 현직 단체장들 시의원들의 활약상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그렇게 고군분투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예비 선량들의 발목을 잡는 '정당공천'이 가로 막고 있을 줄이야…. 해당 국회의원, 도당위원장은 '저승사자'가 되어 이런 저런 연고로 누구는 자르고 누구는 끌어 올리는 '무소불위'의 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으니 공천과 낙천의 외줄타기 묘기를 끝까지 끝낼 사람은 누구누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감히 제안하고자 한다. 정당공천은 폐지해야 되고,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지방자치제의 폐단을 깊히 헤아려 지방자치제의 유보도 권한다. 이젠 크고 작은 단체의 단체장은 모두 선관위 입회하에 선출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콩 하나도 반으로 갈라 먹는 옛 우리의 미풍양속은 사라진지 오래다. 좋은 일에 같이 웃고, 안 좋은 일에 같이 슬퍼하고 위로해 주던 이웃도 어느새 선거철만 되면 헐뜯고 비난하는 원수 사이가 된지도 이미 오래다. 사랑이 증오로, 화합이 분열로, 칭찬이 비난으로, 발전이 퇴보로 가게끔 부추기는 것이 혹시 선거제도가 아닐까 모두 생각해 봐야 한다.
장점이 때론 단점이 되고 단점이 때론 장점이 되는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이 우리가 모르는 단점을 몰고 온 요즘세태를 모두가 ‘국격’을 높이자고 외치는 소리에 파묻어 버릴게 아니라 깊이깊이 비교 분석하여 절충안을 내 세울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요구되는 요즘이다.

기왕에 엎어진 물, 후보자로 공천된 인물이나 정당공천에서 배제된 인물들 모두가 승자이자 패자일 수도 있다. 과장된 비유가 될지 모르나 “천하대세의 흐름을 사람의 힘으로 돌려 세울 수 없고, 순응하는 자는 창성하고 거역하는 자는 죽지 않으면 망한다”는 옛말을 들려주고 싶다. 명나라 진계유(1558~ 1639)라는 사람의 말을 곰곰히 마음에 앉혀 보자.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떳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걸고 나서 평일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평소 병통이 많았던 줄을 알았다/ 정을 쏟은 후에야 평상시 마음 씀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자고로 쌍방이 다 신나면 찬사가 오가고, 쌍방이 다 노하면 욕설이 오가는 것 쯤은 알아야겠다.

이성희 저널니스트  icj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