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3.5.2 화 16:12

법정스님과의 인연(因緣)을 회고하며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유승우 前 이천시장l승인2010.05.0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내가 법정스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된 시기는 1970년대초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선포 무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헌정이 중단되고 긴급조치가 연속 발동되고 있었으며, 대학가에 불어 닥친 유신의 공포 분위기는 젊은이들을 좌절과 분노로 들끓게 하였다.
그 당시 재야세력들은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 장기 독재정권에 맞서게 되었으니 주요 참여인사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함석헌, 김동길, 천관우, 안병무 등 종교계, 학계, 언론계의 유력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법정스님도 동참하였다.
이 당시 엄격한 집회 통제와 언론 검열이 심하므로 이를 피하여 옥내 학술강좌가 많이 개최되었는데, 나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열심히 참여하였으며 그러한 모임에서 법정스님의 특강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40여년 동안 그분의 강연이나 설법, 저서를 통한 가르침은 내 삶의 위안을 주고 큰 영양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분으로부터 얻은 교훈 몇가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비사상(悲思想)이다. 불가의 대표적 용어는 자비(慈悲)이다. 자비 중에서도 비(悲)는 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자(慈)가 모든 중생에게 사랑(즐거움)을 주는데 반하여, 비(悲)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다.
슬플 비(悲)자의 원 뜻은 ‘신음하다’이며 내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함께 앓으면서 신음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자식에게 기울이는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이는 자(慈)가 시혜적(施惠的)이라면 비(悲)는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분은 후자를 특히 더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건대, 최근 6·2지방선거공천에서 탈락한 후보자들의 마음도 비(悲)의 차원에서 헤아려야 할 것이다.

둘째는 청빈사상(淸貧思想)이다. 그분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평소에 입고 다니던 장삼하나만 걸치고 다비(茶毘, 불교식 화장)에 임했으며, 저술한 책까지도 절판(絶版)하며 철저하게 무소유(無所有)를 보여 주었다.
그분은 ‘크게 비우는 사람이 크게 얻는다’고 했으니,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엄청나게 큰 것을 얻은 것이다. 이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선생이 ‘청렴은 천하의 제일 큰 장사(廉者天下之大賈, 염자천하지대고)’라며 목민관의 제일의 덕목으로 내세운 청렴의무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세 번째는 생명사상(生命思想)이다. 그분의 수필 중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에 보면 ‘박새의 보금자리’이야기가 나온다. “난로 굴뚝터진 모서리에 깃을 치고 사는 박새를 보면서 저 박새가 알을 까 새끼를 대리고 보금자리를 떠날 때 까지는, 보리누름에 추위가 있더라도 난로에 불을 지필수가 없었다.”고 했다.
동양의 지혜 채근담(菜根譚)에서 소동파(蘇東坡)는 “쥐를 위해서도 약간의 ‘밥 찌꺼기’를 항상 남겨두고, 부나비가 불에 타죽는 것을 염려하여 점등을 하지 않는다(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 위서상류반 연아부점등)”고 하였다.
박새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마음 역시 성인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네 번째는 근본중시사상(根本重視思想)이다. 법정스님이 1996년 이천도자기축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관내의 이당도요(利堂陶窯)에서 그 분과 차를 한잔 나누며, 과거 유신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스님을 뵈었던 이야기에서부터 환담을 나누는 도중 “금번 도자기축제의 소감”을 묻자 그분은 “상업성(商業性)을 버리고 예술성을 살려라 그러면 상업성은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바로 근본이 잘 되면 줄기와 잎은 자연스레 무성해진다는 원리에 다름이 아니다.
동양의 고전인 대학(大學) 경장에 의하면 ‘사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物有本末 事有終始, 물유본말 사유종시)’는 명귀(名句)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본말(本末)을 전도한 행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시장 재직시 직원 조회나 시민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며 지엽말단(枝葉末端)보다는 근본에 힘써줄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법정스님은 바로 얼마 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깨끗한 학승(學僧)으로서 수행과 저술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나셨다. 그분은 이 시대의 성자로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파하셨다.
특히 나에게는 어려운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시장 재직시에도 뵙는 영광을 가지며 사숙(私淑)의 가르침을 받아 왔다. 마치 다산이 퇴계를 사숙한 것처럼! 부디 법정스님의 명복을 빈다.

2010. 4. 28 법정스님 49재(齋)에
유승우 前 이천시장  icjn.paran.com
<저작권자 © 이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도자예술로99번길 69, 2층  |  대표전화 : 031)636-1111, 637-1314  |  팩스 : 031-632-2580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다00174  |  등록일 : 1993.11.11  |  발행인·편집인 : 조항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항애
Copyright © 2008 - 2023 이천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cjn25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