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5일 설봉서원에서 <명인을 만나다>라는 타이틀로 사랑방 콘서트가 열렸다. 사랑방. 옛 부터 아낙네들이 사랑하는 낭군이 머무는 곳이라 해서 그리 지칭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왠지 먼듯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때로는 오히려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여러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열린 공간인가 싶다가도 은밀히 닫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방 콘서트도 처음에는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가 차츰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공연은 서원 내 명교당에서 평생학습원인 설봉대학 교수진들이 격조 높은 우리 혼을 명인의 기량으로 펼친다고 했다.

어스름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소슬바람이 불어오며 숲을 흔든다.

댓돌 아래서 한옥 처마를 향해 화려한 조명을 비춘다. 시원스레 열어젖힌 들어열개 분합문이 나신을 들어낸 서까래와 서로 안고 받쳐준다. 한층 높아진 처마 너머로 하늘은 시원스레 틔었고 찢어진 구름 몇 조각 한가롭게 흘러간다. 한옥이 공연장소로 비좁지 않을까 우려했던 기우는 사라지고 하늘과 구름, 마당과 대청의 열린 공간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나는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어 다리 길게 뻗고 앉는다. 편안하다. 아늑하다. 거리낌 없이 시원하다. 식구끼리만 모인 듯 속닥한 분위기가 따사롭다.

홀연 흰 도포를 차려입은 옥골선풍 홍석영 교수가 앞으로 나서며 좌중의 시선을 모은다. 그리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끈다.

첫 번째 순서는 이채 시인의 <아버지 눈물>. 작가 본인이 직접 낭송을 한다.

<전략>

아버지가 되어 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중략>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낭송이 진행되며 깊은 숨소리와 더불어 낮은 탄식이 이어지며 감동이 깔린다.

두 번째 순서는 정가. 여창가곡 <평농>을 송규정 교수가 노래한다. 낮은 듯 높은 듯 때로는 짧았다가 길고도 길게 끌어내는 절제된 선율이 단아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격조 높은 궁중 가곡을 들어서 그런가. 어느새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순서는 고혜련 교수의 가야금 산조. 부드럽고 속삭이는 듯 잡아끄는 소리가 12줄 명주실을 타고 흐른다. 때로는 내달리듯 서두르며 달리다가 때로는 한숨 쉬어가듯 숨 고르기를 하며 농현을 희롱한다. 울림은 바람개비가 미풍에 가만히 돌아가다 세차게 돌아가듯 관객들의 쳐졌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이어서 홍석영 교수의 대금산조.

흰 도포에 갓까지 쓰고 의관을 갖추고 나니 한복의 멋이 더욱 돋보인다. 숨죽이고 귀 기울이기를 한참. 드디어 만파식적 쌍골죽 대금이 거친 숨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국가 안위를 위해 거친 파도를 가르며 울리던 천년 전 그 소리가 저취로 장부의 심장을 흔든다. 그러다 이내 고취로 바뀌며 흐느끼는 듯한 선율이 사람의 간장을 녹여낸다.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감동의 열기가 공연장을 휘감는다.

감동을 가라앉히는 동안 조명이 마당으로 향한다. 큰 멍석을 깔은 위에 광목이 펼쳐지고 이교복 교수가 큰 붓을 장검처럼 휘저으며 일필휘지한다. 대금반주가 붓놀림에 힘을 더해간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평생학습의 요체를 말해주는 듯싶다.

이제 무대는 사랑방, 대청, 마당을 다 아울러 하나가 된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숨소리 하나 작은 손놀림 하나도 같이하던 무대가 요술처럼 외연을 넓혔다.

뒤따라 이어지는 해금 장구 반주에 맞춘 강해림 교수의 경기민요 창. 흥겨운 가락이 이어지며 모두가 일어나 어깨춤을 추며 돌아간다. 연주자도 관객도 함께 어우러진 진정한 축제. 이게 우리의 흥이고 음악이며 사랑방 콘서트가 이루어 내고자 했던 수준 높은 우리문화의 창달이 아닐는지.

설봉서원은 제례봉행. 유도진흥. 후학양성의 큰 뜻도 가지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문화 창달에도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2018 사랑방 콘서트는 뜻한 바를 이룬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을 나서 호젓한 산길을 내려오며 오랜만에 우리 노래, 우리 흥을 만끽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함부로 접할 수 없는 격조 높은 우리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며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가을이 시작하는 계절에 나는 큰 횡재를 했다.

-수필가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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