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상환 이천저널 회장

평균 나이 80이 지나면서 부딪히는 현상 중 하나가 건강하게 활동하던 친구, 동료가 갑작스레 타계하였다는 부고를 접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묻게 된다.

“춘부장 어른 기력 강령하신가?”

“아니에요. 벌써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또 여러 가지 대화 중에 가족사를 묻게 될 때에 타계한 것을 예외 없이 ‘돌아갔다’는 표현을 쓴다. 언제부터 ‘죽음’을 ‘돌아갔다’라고 생각하게 된지는 모르겠으나 죽음을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발상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특이한 사생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돌아갈 곳, 그 본원. 그곳이 어딘지는 누구도 모른다. 왜? 일찍이 인류가 창제된 이래 죽었다 깨어나서 그 경험을 전달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우리의 삶을 크게 지배하는 불교, 기독교, 유교적 해석에 따르면 높은 경지의 깊은 수련의 경전은 잘 모르겠고, 또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우람한 가시덤불이 뒤덮인 높은 산봉우리에 오르는데 길이 없으면 엄청난 힘이 들고 갈 곳 몰라 헤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 갈래 길이 보편적으로 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일상생활화 된 생사관의 해석 틀을 살펴보자.

불가에서의 깊은 경지의 것은 높은 수준의 고승, 대덕이 하시기로 하고 일상화된 우리의 해석으로 피부에 닿는 주장은 인간은 인연의 법칙과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낳고 죽게 되며 6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6도(六道)란 천상계, 인간계, 수라계, 아귀계, 축생계, 지옥계로 일컬어진다. 인연에 따라서 생을 받았으나 업장소멸을 못하고, 선업을 쌓지 못하고, 인생 칠십을 허송하다 죽음을 맞게 되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 地, 水, 火, 風 몸의 구성성분의 물질적인 요소는 그 성분대로 땅으로 흐르고 혼은 비상하여 6계를 돈다. 등급에 따라서 축생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또 영계에서는 업장소멸이나 등급이 향상될 수 없다고 본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선업을 쌓고 새로운 업을 쌓아서 전생 죄업을 말소하고 타인에 대한 봉사를 계속해서 큰 족적을 드리우면 죽어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49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얘기는 일단 영육이 분리되었을 때 7일에 한 번씩 빛을 타고 온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는다. 자기에 맞는 빛깔에 끌려가게 되면 그것이 다음 세계의 착상이라고 한다. 마치 어린애들이 사고를 치고 골방 구석 어두운 곳에 숨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업을 쌓게 되면 어두운 빛깔을 따라가고 숨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직위가 높거나 낮거나 최선을 다해 이웃에 봉사하고 타인을 기리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사람은 당당하게 되고 밝은 빛깔을 선호하고 다음 생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인연법에 따라서 생성, 소멸하고, 지배하는 원리는 인과응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이 恢恢라도 疎而不漏(하늘의 그물이 엉성한 것 같더라도 결코 새는 법이 없다)이다.

죄업을 쌓게 되면 자기 대에 갚아야 할 것이고 자기 대에 갚지 못하게 되면 자식 대까지 이르게 된다. 죄업을 많이 쌓은 자의 후손들은 그 끝이 대단히 절망적인 것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기독교적인 해석은, 많은 목사님이 주말마다 강론을 하신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우리가 감사히 경청해야 될 것 아니겠나. 온갖 정성을 기울여 설교 준비를 하고 하늘의 뜻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그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의 사회도 한 단계 우뚝 선 모습을 그려갈 수 있질 않았겠는가. 죄를 지은 자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애통하고 참회하고 구원을 갈구하게 되면 하늘의 손길에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구원의 종교, 믿음의 종교. 특히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롯된 원죄(原罪)가 있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허물이 겹쳐 쌓인 유전죄(遺傳罪)가 있고 자기대에 이르러서 쌓아진 자범죄(自犯罪)가 있다. 노력과 반성과 봉사를 통해서 자범죄는 해소할 수가 있으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유전죄와 원죄까지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예수의 옷자락에 매달려 구원받아 거듭 새사람이 되는 길 밖에는 없다. 예수께서도 ‘내가 있는 곳에는 거할 곳이 많이 있다.’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죽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어떤 형태로 정리가 되는지 육도윤회의 논리처럼 명쾌하지는 않으나 오히려 외경에 속하는 도마경전에서 설파하는 주장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여기서 일컬으되 죽어서 천당 간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그것을 위해서 현 세계를 다 버린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오히려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샘솟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이것이 우리의 나갈 바 아니겠는가. 원래 하나님의 원뜻이 만들어냈던 에덴동산의 재현, 그것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의 방향, 이런 방향으로 우리의 노력을 기울이고 이 땅을 지상낙원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겠나라는 도마의 주장에 훨씬 더 감동을 느끼게 된다.

30여 년 전 캐나다 사장으로 부임하여 4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Stanley Park에 주말에 놀러 갔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창경원에 괴한이 도끼를 들고 뛰어 들어가 사슴의 뿔을 잘라갔다는 사건이 보도됐던 기록이 있었다. 몸보신한다고 녹용을 찾고 도롱뇽 알도 먹는다던지 거의 몬도가네 수준의 사회현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Stanley Park 입구에 들어서니 레드우드가 50m, 70m 자연림 그대로 숲을 뒤덮고 어떤 것은 길목에 쓰러진 것이 원체 커서 그것을 그대로 두고 나무통 속을 차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길도 뚫어놓았다. 계곡물이 깨끗하고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 특히 놀라웠던 것은 토끼, 사슴이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질 않고 잔디밭에 뛰어놀고 어린애들이 손으로 집어주는 과자나 기타 먹을 것을 핥으며 받아먹는 풍경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구나. 저절로 찬탄을 하게 된다. 천국이 따로 있나. 동물과 더불어 생명체가 존중되고 함께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에덴동산의 재현이 아닌가. 불과 300-400년 만에 만들어진 캐나다라는 이 대륙 국가. 이들도 사람일 터인데 이런 아름다운 하늘 동산의 재현을 이루어놓았는데 우리는 역사 반만년을 찾으면서 창경원에 담 넘어 들어가 사슴뿔을 잘라가는 이러한 심성밖에는 키우질 못했던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던가. 마스로우가 얘기하는 궁핍으로부터의 해방도 이루질 못했기 때문인가. 착잡한 마음과 부러움, 그때부터 생긴 결단의 하나가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샘솟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자. 작은 것이라도 좋다. 하나하나 이웃과 더불어 함께 생각하고 이루어 나가는 것을 화두로 삼자’였다. 마침 내가 평생 섬기고 있는 교회의 방향도 같은 카테고리이고 해서 감사하게 생각을 한다.

예수는 지금도 우리에게 힐책하신다. 길가는 행인이 강도를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를 보고 지나가던 랍비가 혀를 끌끌 차고 외면했다. 사제 또한 지나가며 “안됐지만 오늘은 내가 교회 일정이 급해서 그냥 가야겠네.”라며 총총히 사라진다. 그 후에도 기타 부유한 사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살펴보고는 도망간다. 이때 사회적 신분이 가장 낮은 계열에 속한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살펴보고는 어깨에 들쳐 메고 가까운 여인숙으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하고 곱게 누이고 손을 써서 생명을 구한다. 그리고 주인을 불러 치료비를 부담한 후 “이 사람 치료를 부탁하세. 돈이 부족하면 내가 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갚아줄 테니 정성껏 돌봐주게나.”라고 부탁하고, 주인장이 “걱정 마십시오. 환자를 지성껏 돌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들으라. 이때 너희 이웃은 누구인가? 묻고 또 물으신다.

이로 해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고자 선배들과 서약을 하고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큰 성과가 있었다고 내세울 것은 없으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던 삶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는 그 선배들이 다 떠나가고 기력이 쇠잔한 노년으로 탈바꿈되었구나. 그러나 아직도 정신만은 굿 사마리탄이 되고자 하던 초기의 푸른 결심을 되뇌고는 한다.

유교적 해석은 어떻던가. 2500년 전 공자의 가르침으로 비롯되어 주자가례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 정돈되어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그려내고 있다. 덕수궁에 가면 석조전 들어가기 전 입구 오른쪽에 중화전이 있다. 고종이 아관파천하기 전 덕수궁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던 곳이다. 처음에는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아무리 중국의 중화사상에 경도되었다 하더라도 덕수궁 정전에 이런 것을 붙일 수가 있는가. 짧은 소견에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다 보니 인간의 사단칠정(四端七情) 仁·義·禮·智와 喜·怒·哀·樂·愛·惡·欲이 우리의 통치의 기본이었다.

喜怒哀樂之未發이 謂之中이요(희로애락의 성향이 발현되지 않은 것이 바로 중이고)

發而皆中節이면 謂之和라(발했으나 제대로 잘 발현되었으면 이것이 곧 화라)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이요(따라서 중을 추구하는 것이 천하지 근본이다.) 이것은 가운데 토막이라는 것은 아니다. Optimism, 최적치를 추구하는 것을 뜻하는 것 일 것이다. 마치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안 난다. 가장 알맞은 정도의 최적의 줄의 강도, 이것이 ‘中’이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다(화를 추구하는 자는 천하의 도를 이루는 첩경이다.)

致中和하면 天地位焉하고 萬物育焉이라(따라서 중화에 집중하면 천지가 제 질서에 들어가게 되고 모든 천하 만물이 제대로 성장 발육하게 된다)

높은 경지의 인간애가 기본이 됐고 결국 이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엮었었는데 후손인 우리는 이렇게 못난 자화상을 만들어놓았을까.

공자도 말씀했다. 살아있는 삶의 얘기를 하기도 모자라거늘 귀신의 얘기에 정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돌아간 분들에 대해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정결하고 엄숙 단정하게 추념을 하고 기억을 할 따름이다. 될 수 있으면 터치를 안 하려고 하신 것 같다. 조상숭배와 경모사상, 孝로서 generation to generation에 바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 우리가 오천년을 살아왔던 기틀이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돌아간다는 말이 귓전에 뱅뱅 돈다. 어디로 가나? 언젠가는 누구나 떠나간다. 일상 업무에 매달려 정신없이 지나더라도 결국은 똑같이 가는 길. 가진 자, 없는 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똑같이 가게 되지 않는가. 공평하기 짝이 없다.

내 나이도 어느덧 종심의 나이를 지나서 80을 지나고 보니 또 주변에 알만한 분들이 어이없이 떠나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요 향후 10년 내, 10년이라 하더라도 생리적인 시간을 빼면 불과 6-7년 내에 부딪히게 될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고 허송할 시간이 어디 있고, 다툼을 가질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최소한 천박하게는 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또 비록 나이 들었으나 매일을 새롭게 日新日日新又日新하는 거듭 새로워지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남에게 베푸는 물질적 재력이 없으면 가진 바 경험과 지식, 재능이라도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해보자. 남이 내게 바라는 바대로 내가 먼저 남에게 베풀어 나가는 삶을 엮어나가 보자. 내가 친구의 또는 아는 사람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 또한 내 연락을 궁금해 할 터이니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 또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에서 얘기하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맨 끝 신시(身施), 몸으로 때우는 것. 돌아가서 애통해 마지않는 상사에 위문을 간다, 병문안을 간다, 혼사에 가서 축하를 해 준다, 덕담 한마디라도 준비해 마음의 위로를 준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길도 얼마든지 있는 듯하다.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또 주변에 폐를 안 끼치고 떠나자면 몸 관리를 단정히 하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예방·관리하여 몸의 면역체를 강화시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질 않거나 최소화시키는 노력만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을 해 본다.

문득 법구경 강회에서 법정스님이 갈파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릇된 고정관념과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해 가면서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의 자리에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길을 제시했다. 또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했다.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눈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 행여 길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오늘의 내 발자취가 뒷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겠거늘)

가까운 분들이 하나하나 떠나면서 자연히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 것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몇 자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여러분들의 귓가를 어지럽게 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함께 생각해보는 사고의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이천저널  icjn25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