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근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중년에 실직하거나 사업을 실패한 아픔이 꼭 그렇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술잔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세 가지가 사라졌다. ‘명함, 호칭, 갈 곳’이다.

명함은 “세상과의 인연”이다. 질기게 매달렸던 업무상 인연은 깨지거나 소용이 없게 된다.

호칭은 크건 작건 “권위나 기득권”이다. 호칭을 잃으면서 권위는 추락하고 기득권이 상실된다.

갈 곳은 “자존감(自尊感)”이다. 가장(家將)이 자존감을 잃을 때 실직과 실패는 가족 모두의 아픔이 된다.

이 아픔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첫째, 심리적 접근이다.

하루빨리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창업했다가 몽땅 털리기도 한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을 피난처(避難處)가 필요하다. 주변에 공공 도서관, 문화센터가 있다. 이곳에 기본적인 사무장비와 책상, 컴퓨터가 갖추어진 아담한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평소와 같이 집을 나와 신문도 보고, 정보도 검색하고, 독서도 하고, 인문학 강좌도 듣는다. 같은 처지끼리 모여 토론도 하면서 동병상린(同病相燐)의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 스스로 재기를 위한 멘탈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다.

둘째, 정책적 접근이다.

재취업과 재창업 프로그램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별로 다양하게 있지만 우리는 아직 원스톱이나 토탈케어 시스템은 되어 있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 전역에 40개의 WSC(Work Source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 가까운 WSC에 가면 각종 사무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간단한 체력단련 및 휴식,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연방정부, 주, 각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재기 프로그램도 한꺼번에 안내를 받을 수 있고, 신청도 대행해 주고 있다. 이메일에 접속하거나 대표전화로 연결해도 된다. 모든 WSC가 연합하여 구직과 비즈니스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을 원스톱으로 토탈케어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다.

우리는 실직과 실패를 창피로 여기는 ‘수치의 문화권(圈)’에 속해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처럼 ‘패배자’로 취급하는 나라도 없다.

한 번 기회를 잃었다고 해서 전부 잃은 것이 아니다. 남들 보다 먼저 직장을 나왔다고 해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무덤에도 먼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정직한 실패의 아픔을 나누고 보다 관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일생에서 서너 번 이상 실패와 좌절을 한다. 어차피 세상은 다음 무대가 존재하고 쇼는 계속되고 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무대에 오르면 된다. 패자부활과 복원력이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청년실업 문제만 매달려서는 중년의 술잔에 고인 눈물을 마르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