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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최초의 승전 ‘이천광현전투’ 기억해야

이천저널l승인2016.07.20l수정2016.07.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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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은 지난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을미의병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된 이천광현전투를 교과서에 기록하고 후손들이 기억해야한다고 밝혔다.

을미의병은 동학농민운동 이후, 구한말 최초의 항일의병운동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건이다.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 중에 경복궁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농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뒤, 조선 침탈의 걸림돌이라 여겨 일국의 왕비를 극악무도하게 살해했다. 이때 많은 대신들은 일본의 보복이 두려워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못했지만 백성들은 달랐다. 두려움을 떨치고 민족과 국가를 향한 애국심에 불타오른 백성들은 의병을 조직해 일본에 대항했고, 승전과 패전을 겪으며 민족의 일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

하지만 이 자랑스러운 을미의병은 현재 한국교과서에 간단하게만 기술되어 있고 세부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이 을미의병이 갖는 의미와 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각종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은 을미의병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된 이천광현전투를 교과서에 기록하고 후손들이 기억해야한다고 밝혔다.

“을미의병 중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천광현전투’와 패전했던 ‘이천이현전투’는 기록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고귀한 의병의 저항을 교과서에서는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역사에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 최석재 회장은 “고귀한 의병 저항인 을미의병이 가볍게 기술된 교과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이 바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교과서에는 을미의병에 대한 간단한 내용만 기술 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천의 의병전쟁을 이끈 이천수창의소에 대한 설명도 빠져 있다. 또한 을미의병의 봉기 지역으로 춘천과 제천이 표기·수록돼 있지만,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뒀던 이천 지역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은 이천시민을 대표해서 국사편찬위원회와 편찬위원회 고등학교한국사국정교과서 집필진과 심의위원회에 을미의병에 대한 요구사항을 반영해줄 것을 촉구했다.

우선 이천시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구한말 의병운동 단원에 을미년 의병의 역사적 배경과 활약상을 보다 자세하게 기술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을미의병을 기술할 때 이천수창의소와 최초의 승전인 이천광현전투의 내용을 함께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천시민은 물론 후손들이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이 올바르게 기록돼 후손들이 그 정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끝으로 이천시 역사문화연구회와 서희희망포럼은 을미의병과 이천광현전투가 교과서에 기록돼 후손들이 우리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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