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태익 재경이천시민회 회장 | ||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빨리빨리’ 라는 말이다. 이는 우리 국민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이기도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 하는 것이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 단순한 개인의 행동양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고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갔을 때 현지인들이 아는 척 하는 몇 안 되는 단어가 ‘빨리빨리’다. 외국에서도 한국 사회의 특징을 대체로 ‘빨리빨리 문화’로 규정짓는다. ‘빨리빨리’ 문화는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빨리 서양문물을 배우고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고 싶은 마음에 국민 모두가 조급해지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러한 조급증은 근면성과 결합하여 단기간에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룩한 원동력이 되었고, 속도가 경쟁력이 된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조급증이 힘을 발휘하여 IT강국으로 발돋움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우리의 조급증은 더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자칫하면 순서를 그르치거나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실수하기 쉽다. 빠른 성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변칙을 쓰거나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할 위험성도 있다.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기 쉽고 원칙을 고집하면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빨리빨리 문화가 심화될수록 사회는 편법과 변칙에 무감각해지고 ‘대충대충’의 타성에 젖어버린다. 그래서 빨리빨리는 곧 ‘대충대충’으로 통하게 된다. 최근까지의 수많은 대형 참사는 모두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대충대충 한 결과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빨리빨리 문화가 생기기 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의 말을 빌리면 변화와 발전이 더디던 시절 한국인의 특질은 ‘은근과 끈기’라는 것이다.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라 하였다.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가면서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였고 정신적으로 명랑하지 못하였지만 운명으로 알고 은근하게 인내하며 끈기 있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내다봤다. 마치 무궁화 꽃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끈기 있게 피어나듯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생활과 내면에 깔려있던 인내와 은근한 끈기는 빠르게 변모하는 정보화 시대에 빨리빨리 문화의 위세를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고 쉽게 흥분한다. 언어는 정중함과 예의를 잃고 직설적 표현을 넘어 언어파괴와 막말이 일상에 넘치고 있다. 삶은 경쟁 속에서 여유가 없고 변화를 쫓아가기에도 바쁜 나날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온 나라가 흥분하고 뜨겁게 달궈지다가 또 다른 일이 생기면 모든 관심이 급속히 옮겨간다. 이전 사건에 남아 있을 열정과 관심이 부족하니 당연히 쉽게 식어버린다. 한마디로 사회가 양은냄비와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 대충 대충의 관행으로 인한 부작용은 더 이상 방치하거나 용인할 수준을 넘어섰다.
성장을 위해 쉬지 않고 빨리빨리 달려왔지만 이제는 한 숨 돌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다.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차분하고 꼼꼼한 자세가 중요하다.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특히 상대방에 대하여 성급한 판단보다 ‘그래 괜찮아, 무슨 사정 있겠지’하는 이해와 느긋함이 필요하다. 직설적인 언어와 막말을 은근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쉽게 달궈지지도 식지도 않는 가마솥 같은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뜸이 잘 들어야 맛좋은 밥이 되듯이 펄펄 끓이는 성장의 시간 이후에 뜸 들이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 문화, 이제는 우리 모두 반성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천저널 icjn2580@hanmail.net
이천교육지원청 위(Wee)센터, 학생상담 자원봉사자 위촉식 및 월례회 개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