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익 재경이천시민회 회장

요즘 각종 송년 모임이 한창이다. 가는 해를 아쉬워함인지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 동호회, 직장동료모임 등등 각종 회식, 모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흥청망청' 망년회(忘年會)가 주류를 이뤄서 힘들거나 수고로웠던 일, 아픈 기억을 잊자며 부어라 마셔라 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송년회(送年會)로 그 명칭이 바뀌어 사용되는듯하나 주변에서는 아직도 송년회보다 무심코 망년회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망년회란 일본에서 건너온 풍습으로 오래 전부터 섣달그믐께 친지끼리 모여 흥청거리는 세시민속이 있었는데, ‘망년지교(忘年之交)’에서 글자를 빌려 ‘망년 (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불리었고 이것이 망년회의 뿌리가 됐다고 한다. 원래 ‘망년회‘의 ‘망년’은 ‘망년지교’ 또는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온 말로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사귀는 벗을 지칭하며 이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나이를 떠나 서로 친구로 사귄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처럼 ‘노소동락’한다는 뜻이 담긴 ‘망년’이란 말이 일본에서는 엉뚱하게도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忘憂)의 뜻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망년회’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해(年)를 잊는(忘) 모임(會)’이란 뜻이니 어찌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면서 잊는다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었을까?

망년회를 우리식으로 표현한 것이 ‘송년회(送年會)’이다. ‘송년’은 한해를 보낸다는 의미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송구영신(送舊迎新)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송년회’는 차분히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 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먹고 마시며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뜻의 ‘망년회’와는 분명 다른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송구영신의 뜻으로 ‘수세(守歲)’라는 말을 썼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날을 밝히면서 지난 한해 아쉬웠던 점을 반성하며 밤을 지새웠다. 우리가 어릴 적 어른들께 들었던 ‘섣달그믐에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유난히 사건사고와 큰일이 많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갑오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물론 잊고 싶은(忘年) 일도 많겠지만 내년에는 좋은 일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며 송년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수세’에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근신의 뜻과 함께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길하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지우개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인생인데 지난 한해를 망년회로 지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무는 한해를 보내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수세’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다.

한파의 기세가 매섭다. 올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추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는 장기화된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겐 겨울나기가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복지시설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후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작은 정성도 더없이 소중한 사랑의 불씨가 될 수 있기에 나눔과 배려로 희망을 더해야 한다. 요즈음에는 송년회 대신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으로 뜻있는 연말을 보내는 기업이나 단체들의 '착한 송년회'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훈훈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천저널  icjn2580@hanmail.net